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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일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날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줄리어스 어빙>

한 1주일 지난 것 같은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1년 365일중에 300일 넘게 출근해서 일하고, 1주일 평균 이틀씩 철야를 하기도 했고,
이틀밤을 꼬박 새우고 3시간 거리를 운전하고 가기도 했었고, 출장가서 새벽까지 접대술 먹고 숙소를 잡지 못해 노숙자 옆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밤새도록 제안서를 쓰고, 시속 150km로 시내를 통과해 PT를 하러 가기도 했었고, 업체를 막무가내로 찾아다니며 영업을 하기도 하고. (비오는 날 독도에서 고객이 부르면 헤엄쳐 갈 각오도 되어 있다.)
잘 먹지 않는 육류, 고객이 먹자고 해서, 개고기, 염소고기 맛있다고 씩씩하게 먹은 후 체하고, 설사해서 고객사 건물 화장실에서 팬티를 빨아입기도 했다.

여러번 고쳐쓴 사업계획서, 제안서, 프로그램...

비전관리, 조직관리, 회계관리, 프로그램 관리, 업무관리 ... 일은 끝이 없고,
인생도, 회사도 대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적된 삶과 열정이 지혜와 합쳐져서 서서히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 뿐.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싶은 날에 하면 안되는 것일까. '프로'가 꼭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살아있으므로 글을 쓴다. 아직도 내 심장은 220V로 뛰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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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금,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버드나무 피리를 불지 못하리.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모닝콜 - 곽세라 (북하우스)>에서.

   스무살, 대학에 처음 들어섰을 때, 캠퍼스의 싱그러운 바람소리와 교정의 들썩거림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마흔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고, 쌓이는 것도 아니고, 소비하는 것임을. 아프게 오래 오래 생각하고 있다. 

   대학시절에는, 흰 가운을 입고 연구소에서 3일 밤낮을 새우며 연구하는 과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었고, TV CF에 나오는 것처럼 하얀 와이셔츠에 파란 넥타이를 매고 100평쯤 되는 넓은,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빌딩 사무실에서 바람처럼 휙휙거리면서 폼나게 일하는 낭만을 꿈꾸기도 했다. 아주 잠깐이나마 러시아 대륙으로 가서 광활한 대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도 싶었다.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 그리 훗날도 아니었지만.)

   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1년동안 160시간이 넘는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고, 업무분야의 프로그래밍 서적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고, 팀장이 되었을 때는 프로젝트 관리분야 서적을 탐독하고, 자기계발 관련 분야의 책과 팀장리더십에 대한 책 50권을 목표로 읽었었다. (예스24에서 조회해보니, 1년에 책값으로만 100만원 정도 썼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아신 마눌님, 카드를 환수해갔다. 마눌님 카드로 티 안나게 썼는데, 어느 한번 15만원어치 지르다가 들통났다.) 나중에는 CEO에 관련된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당시 회사의 이사님이, '나는 재무관리 이런 실무적인 책을 읽고 있는데, 팀장이 CEO책을 읽는다'고 실무적인 책을 보라고 구박하기도 했었다.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치열한 생존의 경쟁속에서 경쟁력을 갖춰야했으니까.
  그렇게 대한민국 8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주류'공동체 일원이 되었다. 경기 불황에 따른 생존의 절박함, 더이상 뒤로 물러날 데가 없어 배수진을 치고 살아가는 모습들. 그래서 더 치열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동시대인과 어울려 내가 사는 삶이 별나라 외계인의 삶이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보다 100배는 싱싱하다.(고 위로해 본다)

  소프트웨어개발회사의 전설이 된 티맥스소프트 박대연 사장 스토리는 내게도 꿈이었다. 30대의 나이에 '무한도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무모해보이는 도전을 했다는 것. 그것이었다. 문목사님 아들 문성근이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30대에 연극계로 뛰어들어간 것처럼. 0.75평 독방, 양동이의 물이 얼어버리는 추운 감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자신의 삶. 그것을 선택한 용기(문목사님 존경합니다). 아, 나도 나이 40 먹기전에 유학을 가볼까 하는 꿈도 꿔보기도 했다. 아주 잠깐.

   이전의 회사에서 팀장이 되었을 때, 해외 지사장을 해보고 싶었다.  
   에펠탑이 내려다 보이는 파리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뉴욕으로 날아가 저녁 식사겸 미팅을 하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 같은 삶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언감생심이긴 하지만 아주 쪼오오오금은 그런 폼도 잡아 보고 싶었다.) 내 손으로 직접 시장을 개척하고, 땀흘려 일해서 일용할 양식을 직접 만들어 가는 일. 다른 사람이 물어다 주는 먹이를 열심히 먹으며 일하는 것보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때론 사람의 힘이 다할 때, 비가 오지 않는 하늘에 기원을 하며, 뿌린 만큼 거두는 풍요로운 추수, 그렇게 농부처럼 스스로 노동에 대한 댓가를 직접 일구어 보고 싶었다. 날마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었다. (영어교육사업부의 교육원에 불청객으로 내려가 신사업기획 명분 삼아 원어민들과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스캇, 캘빈, 러시아 동화집속 단골 등장인물 동명인, 러시아가 고향이라던 이반. 아, 영어좀 공짜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그런 꿈은, 조직생활에서 갈등에 대한 치유의 힘을 주었다. 해외지사장 할 건데, 사소한 일로 부딪치고 스트레스 받고 싸우지 말고, 그릇의 크기를 더욱 크게 가져야 하리라, 그렇게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웃을 수 있었다. 당시 팀원들 모아놓고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바탕 막 웃는다. 엄청 쑥스러움. 그러나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나도 오기가 있다.) 

   지금은 하루 하루가 새로운 날들이다. 아직 사람 만나는 일, 사업을 만들어가는 힘, 모든 것에서 많이 부족하다. 이 지역 업계의 부장급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열심히 배워가려고 나름대로 용쓰는 중이다. 다른 회사(원청업체) 사장님, 부장급 선배들과 고객 미팅을 다니면, 고객 이야기보다 그 선배들의 말과 행동, 전략을 더 유심히 관찰하고,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절대 상대는 모르게...)  한때는 자기계발 서적들이 '처세술'이라고 여기며 등한시하고 시집같은 문학서적만을 고집했지만, 그 책들에 얼마나 많은 사유와 지혜가 들어있는지, 스티븐코비의 '7가지 습관'과 이채욱의 '열정'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자기계발 서적과 함께 이제 주로 '사장'에 관한 책을 읽는다. 공병호의 사장학, 초심, 작은 회사 경영이야기, 강헌구의 가슴설레는 삶, 적자사장 흑자사장,..예스24에 가서 '사장, CEO'로 검색해서 죄다 구매해 읽어나가는 중이다.

생의 정면에서 배수진을 치며,

  이전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길게는 4년 가까이 함께 했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다행히 전문성을 가지고 있거나, 30대 초반 나이의 직원들은 그럭저럭 새 직장에 들어가지만, 워낙에 '가난한 광역시'이다 보니 같은 분야에 마땅히 옮겨갈 만한 회사, 오래 오래 다닐 수 있는 같은 분야의 회사는 한손에 꼽을 정도. 직장을 잃게 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 이 지역에서 저소득층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니까, 딱 내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초기라 급여도 절반이하로 떨어뜨렸다. 그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눌님의 충직한 예스맨이 되고자 엄청 노력중이다. 충성!!)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작은 회사지만, 가치를 가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하게 된 것들. 이제 '일'이 행복하리라.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퇴직금이라는 약간의 종잣돈이 있었고 (아내한테는 갚을 때까지 비밀이다. 엄수해주시라.), 1주일 낮밤을 술과 미팅 주선으로 꼬드겨야만 데리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던 능력있는 팀원들이 함께 뛰어들어 주었고(상황 설정 완료), 이전 회사 고객들에게는, 거래하던 회사가 문을 닫아 맡겼던 시스템의 운영의 해법이 없는 상황이 발생해, 먼저 고객이 내게 찾아와주었고, 먼저 팀을 이뤄 퇴사해서 나갔던 직속상사의 회사에서 '물'심 양면으로 끌어주고. 몇번의 설득끝에 아내도 응원을 보내며 동의해주었다.
  웬지 박대연 사장님 스토리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가 될 듯한 상황설정이지 않은가.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아직 여력이 없어 헌금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벌어서 사내 유일의 독실한 크리스찬인 나부장님을 통해서  감사표시 하겠습니다. 나부장님 사내 전도도 열심이십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아멘.)

  그렇게,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해외'지'사장보다 한 레벨을 올려서 출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시작하기전 6개월 정도 참 많이 고민했었다. 무엇을 하는 것이 내가 가장 행복한 일인지. 김남희, 곽세라의 책 속에서도, 내 자신의 묘비명에 나는 어떻게 살다가 갔노라고 남길 것인지. 아쉽고 후회하지 않는 삶, 무모해 보일지라도 스스로에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스무살의 나는 무엇을 생각했었는지.

  지금, 지금,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버드나무 피리를 불지 못하리라.


   다양한  SI프로젝트 PM경험을 쌓으면서, 나름대로 신념이 있다. (팀원들에게 SI프로젝트는 고객에게 달을 따다가 주는 일이라고 비유를 하곤 했다.). 눈앞의 손익계산서에 집착하지 말고, 조금 인력과 공수의 손해가 나더라도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장기적으로 고객과 회사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SI프로젝트는 특성상, 비용처리가 끝나면 갑을관계를 역전 시키고 싶은 '유혹'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 유혹을 떨치고,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낮은 자세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성장의 지름길이다. 특히나 초창기 기업에게는. (물론 손익계산서를 놓아서도 안되고, 고객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고생한 만큼 티나게 지원해주는 지혜도 꼭 필요하다.)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해질 수 있고,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도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이다. 돈을 많이 벌어, 더 좋은 차 뽑고, 좋은 술집 가서 술먹고 하는 즐거움 보다(한때 이전 회사의 주당클럽 회장 감투를 쓰기 썼지만...)  이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돌려주는 나누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 일치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디자인팀장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해에는 출퇴근에 더 많은 자유를 주고, 그(엄마)가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유일한 박사님의 유한양행, 유한킴벌리 등이 회사의 철학적 모델이다. 안철수 형님이 사업가적 모델(근데 술도 안드시고, 담배도 안피우고, 넘 심심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안철수 형님을 보면 늘 도종환 시인과 삶의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사업적 모델은 티맥스소프트, 구글 본사가 회사 작업환경 모델이다.^^

  우리는, 우리가 꿈꾸었던 행복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개발중인 주력제품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이 지역에서 최고의 실력과 경쟁력있는 업체로 자리잡고, 뚜렷한 수익모델과 비전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배우도, 성공기업도, 사실은 대박이 아니라 누적이라는 것. 삶도 회사도 누적이라는 것.
  4월은, 사즉생의 각오로 일해보자고 개발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일이 많아질 수 있어 두세달은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더니, 이전 회사에 함께 있을 때 '악덕 팀장'이라고 놀리더니, 이제 악덕 기업주라고 놀린다. '노동청에 고발하지 말아주세요. 성과물은 모두 함께~~' 응수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생각하고 다짐한다. 나는 회사의 얼굴이다. (키 크고 잘 생긴^^), 결국은 고객이 내게 호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인드콘트롤 100만볼트로 충전하고,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진정성. 돈만을 쫓지 말고 고객의 입장에 서서 일을 진행하고, (물론 이윤추구는 당근  기업의 제1차적인 목표다.) 1차 목표, 이 '가난한 광역시'에서 최고의 개발회사가 되는 것.100만볼트 마인드 충전하고.

  내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생각한다. 태초부터 크지 않았다면, 노력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그릇을 키울 수 있겠지.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 다짐하고. 상대방이 나보다 뛰어남을 인정하라.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이건 간에 하나라도 배우려고 노력하자. 배에다 힘을 가득 주고 그릇 키우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자꾸 배만 나와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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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헤세)


지금은 직원들이 모두 떠나버린, 겨울바다 같이 황량한 그곳(케이티이에스, KTES)에 한 때 많은 이들의 꿈이 있었다. 
팀장이 되어 첫 회의를 주재했었던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대한민국에서 구글을 넘어서는, 토종의 아름다운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어 보자.
척박한 IT업계에서 야근의, 야근을 위한, 야근에 의한 개발회사가 아닌 개발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어 보자, 

3층 회의실을 내어주고 2층에 내려가서 작은 탁자에 둘러 앉아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각, 지방노동청  외부로비,
마지막까지 남았던 30여명의 직원들중, 나를 포함해 22명의 직원들의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에 대한 금액 합의를 끝냈다. 퇴사직원들의 대표로 복잡한 공식과 숫자, 서류절차를 맡아서 처리했던 것은, 팀원들에게 지키지 못했던 약속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다.

이렇게 해서라도 마지막까지 미안함을 대신해주고 싶었다.


지역SW특화육성사업의 감리기간에는 팀원들 점심도 굶겼고, 서버파손때는 이틀씩 집에 보내주지도 않았다. 회사 소파에서 선잠을 자던 홍대리, 효대리.

일요일에 출근시키고, 6시 데이트를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라고 시킨 적도 있었다.

또 서울에서 전남 장흥까지 내려가서 근무하는 악조건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영어교육사업본부의 신윤채, 정헌민, 조은경...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급여가 수개월씩 밀리던 시절에도 사비로 보충해가며 출장을 다녔고, 하고자 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믿음과 꿈, 열정이 있었다.


고맙게도, 그렇게 고생을 시켰던 개발팀원들이 기꺼이 따라나섰고,

개발팀원들과 함께 나와 새로운 회사에서 시작한지 벌써 몇 달이 되어간다.

고객을 만나러 다닐 때, 옆에 누군가가 이전 회사에 대해서 물어보면, 

현재의 법정관리 상황을 말해주면서, 아직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귓볼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가슴속 명치 끝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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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 a la vida,

대한민국 사회 88.9% 사람들의 숨과 땀이 범벅된 일터,
한 시대의 진정한 주류 공동체에서 울고 웃고 함께 떠드며,
"삶은 피곤한 발로 전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쓰는 글과 노래, 일에 동시대인들의 간절함과 진정성을 담을 수 있도록
삶은 가장 값지고 귀한 이력을 내게 주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2008년 9월. 다니던 회사(케이티이에스, KTES)는 법정관리(회생)에 들어갔고,
직원들은 모두 퇴사했습니다. 2008년 봄, 여름, 가을은 지난 몇 년중 가장 혹독한 날들이었습니다. 꽃이 피었다가 졌는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젊은 연인들이 손가락을 걸고 미래를 약속했는지, 시인 정호승과 도종환은 시집을 냈는지, 우리는 주변의 그 무엇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당신의 집과 거리"를 누비고 다닐 것이며,
아직도 우리는 "맑은 눈, 그 깊은 곳을 응시할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을 "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10월. 함께 일했던 개발팀원들과 함께 작은 새로운 회사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이 지역을 주름잡았던  최고의 개발자와  PM, 기획자들입니다.
전남대학교 차세대통합시스템 구축에 참여하여 온오프라인 통합교육관리시스템인 eClass를 독자적으로 구축하였고, 2006,2007년 지역SW특화육성사업 프로젝트도
감리단의 '적정' 판단을 받아 성공적으로 개발을 완료했었고, 수 많은 프로젝트들과 함께 씨름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어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사원이 주인이 되는 기업, 최고의 브랜드가치를 가진 솔루션과 서비스,
수익에 대해서는 작더라도 이익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기업
그래서, 회사에 아침에 눈을 떠 출근하는 일이 행복한 기업.
다시 한번,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늘 우리가 꿈꿔왔던 최고의 개발회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주가폭락, 환율급등, 제2의 IMF ... 여건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 험한 시기에 새롭게 작은 회사에서 시작하다니, 주위의 시선들에 걱정이 묻어나는 것은 뭐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고, 특히 전에 같이 근무했던 상사의 회사로부터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반드시 행복한 기업으로 성공하리라 다짐합니다.
"꿈이 있거든 땀을 흘려라.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꿈에 쏟은 땀의 양이다."

1. 절대 포기하지 말 것  
2. 늘 감사할 것  
3. 항상 준비할 것  
4.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할 것  
5.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것. 
6.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 것. 
- 스스로 세상에 단 하나의 최고의 걸작품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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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계절 2008/11/09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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