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3차 리뷰를 위해 마더를 서게될 국내 5위권 내에 있는 SI업체 본사에 다녀왔다.
경쟁입찰인데, 거의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게 된 모양새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선두권 업체 담당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과(겪어보면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나 SI프로젝트 진행하는 것은 대동소이하지만) 제안서 작성부터 리뷰까지 좋은 경험이다.
아직도 힘겹고 상황이 녹록치는 않지만, 돌아보면 고비고비마다 운이 좋았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실력이 뛰어난 동료와 후배들에 밀려 이직을 고려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눈여겨 봐준 상사덕에 팀의 리더가 될 수 있었고, 팀장이 되어서는 컨소시엄 참여 경험, 제안서 작성부터 최종 프리젠테이션까지 직접 나서는 경험도 얻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회사에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초빙한 정보기술사 감리반장으로부터는 1주일에 몇차례씩 1달동안 집중 교육을 받기도 했다. 워낙 바쁜 상사 덕에 과장이라는 낮은 직급으로 부서의 거의 전권을 위임받아 내부 전직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들.
직장 생활의 가장 큰 복은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던가.
회사 내에서 그런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정말 힘겨운 고비를 겪을 때마다 마치 예비되어 있던 것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퇴사후 첫걸음마를 내딛을 때 도움을 줬던 이전 회사 직장 상사에서부터, 가능성만을 보며 중소기업지원사업 수주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모 실장님. (실장님이 아니었으면 오늘 내 위치가 여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류상으로는 무소속이신 OOO사장님, 늘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가 나타나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큰 힘을 받고 있다. 절대 퇴학이 안되는 '정학' 이사님께도 늘 감사하다.
덕분에 다시 좋은 기회다. 이전보다 비교하기 힘든 고생이 예감되는 프로젝트지만 수주가 된다면 내외부적으로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수주가 안되면, 이 글을 다시 쓸 자신이 없어,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로라도 블로그에 남겨야겠다.)
오랜만에 대학 동문회 까페에 들어가, 성제 형이 올려놓으신 시를 읽다가 웃어본다.
지문
-권혁웅(1967년생)
내가 모르는 일이 몇 가지 있으니
바위에 뱀 지나간 자리와 물 위에
배 지나간 자리와 하늘에 독수리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여자 위에 남자가 지나간 자리*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도무지 모르지, 손가락마다
소용돌이를 감추어두고 사는 일
손잡을 때마다 타인의 격정에 휘말리는 일
내 삶의 알리바이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개들은 짖고
먼지는 손에 묻고
버스는 떠나고
비행기는 하늘에 실금을 그으며 날아간다
나는 개를 먹고 개처럼 짖고
개털은 날리고 나를 따라
먼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고
내가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떠나가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길고 긴 타이어자국을 남긴다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흩어진 머리카락,
여기에 내가 아니면
네가 누워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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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제목이고, 내용은 내용이고, 제목과 내용은 전혀 매칭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매칭시키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술 한잔 먹고 횡설수설하는 글이 쭈욱 이어집니다.
고은시인의 오래된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
제 메신저 제목으로 아주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백창우 시인(가수)이 좋아한다던 '눈 녹으면 땅 드러날 날 있을거야'를 메신저 제목으로 썼는데, 넘 가슴아파서...
이사를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다가, 아이들 육아로 부모님집에 얹혀서 한 3년 살다가 다시 아파트로 나왔습니다. 이번 아파트 무지 넓습니다. 무려 41평. 아무래도 평수를 고해성사를 해야 맘 편할 것 같아서.
(대출을 받긴 했지만, 이러고도 내가 외국인노동자 도와준답시고 깝죽대면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이러고도 봉사활동 하겠다고 깝죽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아내와도 많이 싸웠지요. 아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나주가 혁신도시 들어가면서 또 부모님 덕을 봤지요. 자식이란게 언제까지 부모 등골 빼먹으면서 살아가는지. 아이둘을 키우면서, 제 새끼들 위하는 건 금이야 옥이야 해도, 자기 낳아준 부모님 등골 빼먹는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늘 그런 죄송스러운 마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그런 날들. 그래도 맘 고쳐 먹고 살고 있습니다. (거실을 어떻게 꾸밀까 하는 순간부터 이기적인 욕심이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집값 보태주신 돈 절반 기부하자고 했다가, 싸이코 취급받았습니다. 중소기업 월급쟁이 주제에 큰 소리 뻥뻥쳐봤자 돌아오는 건, 깨갱깽깽 소리 밖에. 언젠가 가진 것 모두 드러내어 함께 나누는 삶이기를 소망하고, 노력합니다.
생존을 위해 하루 하루 노동하는 이 땅의 이웃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고백합니다.
여하튼, '거실을 서재로' 귀가 솔깃했습니다.
이사 첫날은 마치 남의 집, 빈집에 불쑥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는 것처럼 이상했습니다.
둘째날, 아, 여기서 10년 20년을 살겠구나.
이곳에서 흰머리카락이 머리를 반쯤 덮고, 이곳에서 은결이와 진모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어떻게든 대안학교에 넣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지만) 그렇게 한 세월 늙어서,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을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나의 삶의 가치가 풍요롭게 향내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1. 거실을 서재로.
2. 거실이, 놀이와 문화와 삶이 뒹구는 생의 공간으로
3.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폼나는 공간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기뻐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뭐 그렇게 거창한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써얼렁 합니다. 거실에 걸어진 것이라곤 벽시게 달랑 하나.
한쪽 벽면에는 조립식으로 된 책꽂이를 두고, 거실을 도서관처럼, 놀이방처럼 꾸며보고,
가수 김광석의 공연사진 두어장, 그리고 문목사님 사진 두어장을 걸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시그림을 걸어놓을 예정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 곽재구 '은행나무'를 걸어놓고, 안도현의 '사랑한다는 것' 이런 시도.
어렸을 적,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고모가 가져왔나 싶은, 김남조의 '후조'라는 시가 벽에 걸어진 것을 보고, 아, 사랑은 이렇게 쓸쓸하고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은결이와 진모한테도 도움이 될 시들.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이 시도 걸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초대합니다. 상바라바라샘네 가족. 예나네 가족, 애 아빠가 될 명진,순영 가족.
이곳에 오는 모오든 친구, 후배들. 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광영,세민부부, 규완,자현부부 도 진작에 초대장을 놓았습니다.
방4갭니다. 이제 거실에서 안자도 됩니다. (평수가 넓으니깐 그건 좋네요.)
인생 여행하는데, 이 작은 도시, 하룻밤 묵어가는 주막이라고 생각하고 함 들렀다가 갔으면 좋겠습니다.
음...
가수 김광석 사진은, 예전 한겨레신문 사진기자였던 임종진 작가(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긴 했는데, 답메일이 없는 걸 보니, 제가 급한 욕심에 사진달라고 떼썼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문목사님 사진은, 명진이한테 부탁해놨는데, 한 3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서 직접 뛰어볼 생각이고요.
집을 꾸미는데 한 1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두 모여서
아름다운 꽃으로 만개하고, 와아, 하아 아름답다, 하는 생의 절정의 순간까지.
쩝...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보니.
김남희 작가가 얻었다는, 여행에서 돌아와 '이토록 단호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확인하는 며칠을 보낸 후 겨우 작고 초란한 방 하나'가 생각납니다.
(음..짜식, 우왕좌왕 마음의 갈피를 못잡는, 소심한 짜식, 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들...)
사진을 올려야지요.
거실이 하나씩 완성이 되면 사진을 올릴 계획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이웃들이 오늘 밤 다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술한잔 걸친 오늘의 횡설수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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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다 쓰고 며칠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 글을 트랙백이었다.
한 때 '바닥에서도 아름답게'라는, 곽재구 시인의 시 제목을 따서 홈페이지를 꾸렸었던 벗.
그 벗의 홈페이지에 답글로 달기에 너무 길어서 트랙백으로 남긴 글.
대한민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등불 하나 켜고 사는 예나네 가족이 있음을 알게 되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도 부쩍부쩍 환해지리라.
예나네 블로그 : http://blog.naver.com/helim78
지역에서 먹고 사는 선뱁니당.
사는 일은....
일상은 계획에 대한 설레임의 반복이고, 워커홀릭도 아닌데 쏟아지는 업무와 펼쳐보고 싶은 업무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그럭저럭', '대충대충' 요건 절대 아닌데... 복잡합니다.
자동으로 주어진 프롤로그(태어남)에 이어 스스로 기획하는 삶의 두번째 프롤로그를 쓰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입니당.
반복된 패턴의 일상이 아주 장기화되리라는 것 때문에 한번쯤 쉬었다가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시 한편 쓰는 일은 ..
눈물겹도록 시 한편 쓰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당. 워커홀릭도 아닌데, 10월, 11월은 잔인하게도 제게 시 한편을 허락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만, 12월은 기어이 세편의 축시를 허락해줄거라 믿습니다. 아멘.
축시를 쓰는 시간동안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기쁜지, 명치 끝 저 깊은 곳에서 오는 찔끔 눈물, 그 무한한 까따루씨쑤.
한번 맛보아야 살 것 같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블로그의 위태하고 평온한 바람을 일순 깨뜨릴 것 같아서 늘 눈팅만 하다 갔습니다.
이곳에 와서 비슷한 세계에 사는 사람이야기만 읽어도 가을저녁 공원에 산책갔다온 기분이었지요.
엊그제 동문의 밤에서도 예나어머님(^^)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더랬지요.
오늘은, 걍 갑자기 용건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주소가 알고 싶어졌습니다. 소포를 받을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결혼6년차 아이 둘을 가진, 부부싸움 횟수 선배가 머얼리서 마음을 포장지로 싸서 뭔가를 보내보려는 꿍꿍이속입니다.
OpenSpace21이 FlySpace.co.kr 로 바뀌었습니다. 한번만 더 비밀글로 다녀가시면 어떨까요?
걍 다녀가삼.
모두 모두 다 반갑습니다. 반갑스음니다아~~ 반갑스음니다~~
블로그에 스쳐간 숯불바베큐양념무뼈치킨, 반갑스음니다~~
배달청년 반갑스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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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삼성전자 매스게임 동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우리회사에서 삼성SDI로 이직한 벗이 있어, 매스게임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6개월여에 걸친 연수교육이 끝나고 부서배치 받기전에 잠깐 짬을 내서 우리 회사에 들렀던 그, 그와 나는 회사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였다.
'싱싱한 영혼이여, 오래 오래 건승하라'
매스게임 동영상을 두세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몸이 들썩들썩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나도 함께 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어울려 그 싱싱한 젊음을 나누는 자리에 나도 끼어 있다면 하는 부러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이 '삼성전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신념과 가치관,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이 우루루 벌떼처럼 함께 모여들어 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서로의 몸을 비비며 미래의 비전 한 꼭지를 공유하며 뜨거운 열정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인가.
물론 '적극적인 동지'가 아닌 '회사원'으로 모였지만, 대부분 20대 중후반인 청년들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사원으로서 그 첫마음은 얼마나 뜨겁고 설렐 것인가.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는 그런 '참여의 기회'가 부러웠다.
'강경대'로부터 시작해 김귀정, 박승희 ...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대의 폭압에 스러져갔던 전대협 마지막세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학교 강의실에서 잠을 자고, 출범식을 맞이했을 때, 그 아름다운 장관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수만명의 청년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어내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율동을 즐기던, 그 수만명의 하나된 함성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던 경험.
( 92년 서태지의 등장, X세대 논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80년대 대학세대와는 또다른 문화공동체가 당시 우리 의식의 한 지지대이기도 했었다. )
몇년전까지는 가끔 안치환이 무대에 선다고 하면, 대학축제에 놀러가곤 했었다. 그곳에서도 그런 '집단의 아름다움-젊음과 문화의 공동체'가 있었다.
이제는 야구장에 가서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 가끔 그런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문부식)'이라고 했던가.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일 것. 서울에서 생활한다면 대학로에 자주 놀러가고 했을텐데, 지방이라 그런 기회가 없어서 많이 아쉽다.
대학졸업반 시절, 삼성전자 입사시험을 본 적이 있었다. 운좋게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SSAT를 거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전공면접'과 '인성면접'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전공면접에서 나는 '반도체 극성'에 대한 부분을 선택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했었다. 프리젠테이션 끝나고 면접관이 던졌던 질문이 기억난다. PNP, NPN 에서 전자가 어떻게 끌려가는지... 그 때 나는 마땅한 표현이 없어, 손짓을 동원해가면서 "Collecting 한다"는 표현을 했었다.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터라, 가급적 모든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의도적으로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용어를 바꾸어서 설명했었는데, 결국 표현이 막히자 Collecting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다른 면접자들은 전부 영어로 용어를 표현하는데, 나만 우리말로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억지스럽기도 했다. 음. 친구들은 다 원서로 공부했는데 나는 주로 번역본으로 공부한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 이력서에는, 항상 고등학교 졸업후 대학입학까지 3년의 '서류상의 공백'이 있다. 전공면접시간에 한 면접관이 그 공백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고, 솔직하게 답변을 했었다. Student movement로 가장 유명한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고.
몇가지 질문들이 오고가고,
"삼성에는 노조가 없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상된 질문이 나왔다. 사실 전날 밤잠을 설쳐가며 거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답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정답은 없었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여유있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삶, 그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의미의 답을 했더랬다.
그 면접관의 환한 얼굴이 기억이 난다. 3~4명쯤 되던 다른 면접관들은, 계속 이어지는 면접 '업무'에 다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었는데, 그 면접관만은 부처님처럼 얼굴이 환히 빛나고 면접자들에게 눈빛을 맞추고, 활기에 차 있었으니까.
(TV에 자주 나오는 조연배우를 닮은, 배우를 해도 될만큼 핸섬한 얼굴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 얼굴을 찾으라고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새파랗게 젊은, 입사 면접자에게 '삼성노조'라는 질문을 뭐 심각하게 던졌을리는 만무하겠지만, 함께 면접을 봤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 논란이 분분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해에 결국 입사시험에 합격했을까, 떨어졌을까^^
나는 지금, 지방에 있는 한 IT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개발자에서 막 벗어나 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 잡지, 신문, 책, 학습, 가투로 익혔던 삼성은 '공공의 5적'이었는데(지금 생각하면 나의 이해와 인식이 얼마나 경직되고 피상적인 것이었는지 우습기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꽤 진지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내 회사 책상의 책꽂이에는 '삼성관련 서적'들로 가득하다. '삼성'에 관한 책이라면 웬만한 책들은 거의 모두 구입해서 읽어가고 있는 중이다. (개인사정으로 입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런 질문과 답변에도 그 해에 나는 삼성전자에 최종합격을 했고, 유성에 있는 연수원에서 며칠간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도 했다.)
한국현대사에서 삼성, 현대로 대표되는 재벌기업성장사에 대해서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냉철하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좀더 확대하자면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기여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중소기업 IT개발팀중 한팀의 팀장으로서, 삼성SDS, 티맥스소프트, 안철수 연구소, 구글 등은 내게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조직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점. 소속된 직원들의 뛰어난 마인드와 역량을 배운다는 것은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건 우리 팀과 부서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까.
회사생활을 하려면, 세상 어디에서나 언제나 치열하게 살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 정말 뼈저리게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치열함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열심히 배워야 하리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결국, '삼성'의 문제를 '구성원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든지, 고정된 이미지 틀(물론 그 이미지 틀은 언론방송, 본질적으로 삼성으로부터 나온 것이겠지만)에 갇혀 굳이 무리하게 삼성전자 매스게임을 재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볼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일 것이고, 나는 거기서 '역동하는 젊은 청춘들의 싱싱한 집단적인 아름다움'이 혹여 다른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압도할 수 있을만큼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본 제목처럼, 그 설레는 첫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건승하기를 기원한다.
개인만의 쾌락과 안락을 위해서 보다, 집단(공동체)의 목표와 비전을 위해서, 또 그것이 개인의 것과 일치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 매스게임 동영상' 에서 '삼성전자'가 아니었다면,
만약, '유한킴벌리 매스게임 동영상'이었다면, 우리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XX회사'라는 명칭(소속) 때문에 그 매스게임 동영상에 180도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엉뚱한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백만불짜리 열정(이채욱)에서 보면, 사원에서 팀장이 되는 순간이 직장생활의 과정중에 가장 설레는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다고 한다. '지시받은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에서 업무를 '기획'할 수 있는 가장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는 다른 한명의 팀장을 포함해 15명의 팀원이 있다. 이직률이 높은 중소IT기업이고, 지방업체이긴 하지만, 안연구소, 티맥스, 삼성SDS를 넘어서는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의 구글을 꿈꾼다. 각각의 팀원들이 평생 직장으로 삼고싶을 만큼 키워나가고, 백발이 성성한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이 20대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열정과 꿈을 다할 수 있는 곳. 10년이나 15년쯤 뒤에는 우리회사 남미지사장, 중국지사장, 러시아지사장 등 아직 미개척시장으로 나가 해외지사장으로 매출액 500억, 1000억을 이루어 보고픈 꿈도 있다. 지금 동고동락하는 팀원들과 함께 그런 꿈들을 이루어가고, '모두 모두 즐거워 떡도 먹고 술도 먹고'
(아, 그 과정중에 설레는 목표 하나, 대한민국 최고의 '사보'를 직접 만드는 것. 지금까지 그 어떤 유명한 사보도 흉내내지 못하는 가장 멋진 글과 그림이 실린 사보. 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 때까지 열심히 할 것. 삶은 누적이지 대박이 아니라는 것. 지금 당장 진행하는 프로젝트 멋지게 완수할 것. 최소한 1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
그리고, 멋진 귀향.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고향(나주시 금천면 동악리)을 대신해,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 대안공동체 마을로의 귀향. '이익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곽재구)지 않아도 되는, '느림의 미학',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는, 섬김, 나눔, 연대, 실천. 그런 아름다움을 꿈꾼다.
꿈은 머지 않아 실현되리라. 그 과정에 서 있는 매 순간 순간들이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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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많이 황폐해졌다. 원래 이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러다가, '뼈 아픈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잠깐만, 아주 잠깐만 하고 미루어둔 일들이 '마른 장작처럼' 쌓여만 간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한달에 한통씩 쓰자고 스스로 약속했던 편지글.
은결이와 진모에게 한달에 한번씩은 글을 남겨두리라 약속했던 것들.
'최강팀의 7가지 성공전략' 이런 류의 책들에 밀려 1년 가까이 사무실 책상에 꽂혀져 있는, '문익환 평전', 김형수의 책들, 김형경의 책들.
우울할 때마다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했던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모를, 강금실의 '서른의 당신에게'
"임대리님, 시골에서 엄마가 올라와 한시간정도 늦게 갈거 같아요."
"용봉91승철(수배중)부인출산. 들솔도움필요. 91이상3만원.ㅇㅇ은행 074..."
"12월19일우리딸이2주나빨리나왔어요 축하해주세요~~전목다쉬고탈진상태랍니다..^^"
휴대폰의 문자메시지에는 미처 답장을 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쌓여간다.
승철이, 아직도 현장에 있으리라 생각하던...
치열하게 살지 않고서는, 그곳이 어디든지 살아남을 수 없으리란 걸 빠르게 체감하고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도 더 절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매 순간순간마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바보같이.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조금만 더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내년에 아파트로 이사가면,
회사일이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너무 늦지는 않을까.
어떤 마을
-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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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오후 6시 40분.
회사차를 끌고 시청에 들렀다가 sk건설 현장사무소에 왔습니다.
족구를 열심히 하는 현장직원들 멀찌감치 차를 주차시켜놓고,
아, 날 따뜻해지면 족구좀 했으면 좋겠다,
네트로 공 넘어다니는 거 구경하며
들어선 사무실 썰렁했습니다. 약간 당황.
담당자인 우과장님, 주차장을 보니 족구선수로 이마에 땀 뻘뻘 흘리며 뛰고 있습니다.
사무실안에 서서 멀리 손짓 고갯짓을 하니 인사는 받아줍니다.
한게임 끝나고 들어오시겠지. 족구하는 풍경을 보니 그래도 마음도 여유롭습니다.
얼레, 코트 바꾸고 2세트합니다.
옆에 있던 지양근 건축기사 왈, 2세트 끝나면 결승 해야 될 것 같답니다.
아~, 주머니속 담배를 찾았습니다.
빈갑입니다.
회사차 운전석 옆에 The One 있는거 봐뒀습니다. 아마 김이사님 담배인 것 같았습니다.
담배에 관한한 놀라운 집중력과 기억력, 담배위치 기억은 귀신입니다.
주차장에 가 회사차 문을 열고 담배갑을 집습니다.
흐음... 빈갑입니다.
그 때 족구 3세트 끝납니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데...
다시 사무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디자인팀 광영씨한테서 전화옵니다.
'김정민대리님이 일요일 교육정보원 일 가서 받아온 일당', 삽겹살로 쏜답니다. 빨랑오랍니다.
갑자기 배가 고파집니다.
계약서 작성합니다. 도장 막 빼먹고 찍습니다.
(옆에서 우과장님, 지양근기사님 나서서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합니다.^^)
이제 회사차 끌고 돌아갑니다.
'목표 게시물' - '표지판' 시청
타겟을 잡았습니다. 벌써 3~4번은 다녀간 길. 눈만 부릅뜨면 회사로 돌아가는 길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늘 봤습니다. 고가도록 같은 큰 길을 쭈욱 가다가 '시청'이라고 써진 표지판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새면 됩니다.
날은 어두워가고,
광영씨는 또 전화를 하고,
한 참을 가다보니 표지판 글씨가 모두 페인트로 지워져 있습니다. 지금 공사중인가 봅니다.
그래도 시청 나오겠지, 설마... 계속 달렸습니다. 바람이 상쾌합니다.
'페인트로 지워진 표지판'은 없어졌지만, '시청' 표지판은 안나옵니다.
'ㅇㅇ여대 가는 길'이 보이고, 호대 캠퍼스 가는 길이라는 것도 보이는 듯 합니다.
이대로 쭈욱 가면 지구 한바퀴 돌아서 올 것도 같은데,
가스차인지, 휘발유차인지 연료도 반칸밖에 안남았습니다.
차량에 장착해뒀다는 GPS는 시속 13킬로미터만 넘어가면 '티잉, 티잉, 티잉' - 숨도 안쉬고 울려댑니다.
결혼하고 처가(강진)를 갈 때 때때로 나주를 지나쳐 목포로 빠졌던 옛 추억이 생각납니다.
낮에 갈 때 다르고, 밤에 갈 때 달라서 낯익은 길도 늘 새로운 여행길이 되어 줍니다.
시내 현대극장에 영화보러 갔다가, 천변을 여섯바퀴를 돌았던, 아름다운 데이트가 떠오릅니다.
가보면 좌회전이 안되고, 가보면 맞은편이었던 드라이브의 추억.
아 아,
길위에서의 겪은 절정의 추억,
이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드라이브'를 논하지 말라!고 옛사람들은 이야기하는.
곰사냥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처럼 대전 거쳐 충북 영동 들어왔던 길,
되돌아갈 때 정말 길을 거슬러 그대로 나갔던......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식은 땀이 송알송알,
신문방송에서만 접했던 고속도로 역주행.
급한 마음에 차머리를 돌려 반대로 나간 길.
부산가는 하행선이랍니다.
그래도 '역'주행이 아니고 '정방향' 주행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추풍령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대전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전날 대전갈때 백양사 근처에서 차가 고장나 영동까지 9시간 걸렸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 시간은 마음이 넉넉해질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길이 어디쯤일까,
옆길로 새서 유턴해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자유를 꿈꿉니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저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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