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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3차 리뷰를 위해 마더를 서게될 국내 5위권 내에 있는 SI업체 본사에 다녀왔다.
경쟁입찰인데, 거의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게 된 모양새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선두권 업체 담당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과(겪어보면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나 SI프로젝트 진행하는 것은 대동소이하지만) 제안서 작성부터 리뷰까지 좋은 경험이다.

아직도 힘겹고 상황이 녹록치는 않지만, 돌아보면 고비고비마다 운이 좋았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실력이 뛰어난 동료와 후배들에 밀려 이직을 고려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눈여겨 봐준 상사덕에 팀의 리더가 될 수 있었고, 팀장이 되어서는 컨소시엄 참여 경험, 제안서 작성부터 최종 프리젠테이션까지 직접 나서는 경험도 얻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회사에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초빙한 정보기술사 감리반장으로부터는 1주일에 몇차례씩 1달동안 집중 교육을 받기도 했다. 워낙 바쁜 상사 덕에 과장이라는 낮은 직급으로 부서의 거의 전권을 위임받아 내부 전직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들.

직장 생활의 가장 큰 복은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던가.
회사 내에서 그런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정말 힘겨운 고비를 겪을 때마다 마치 예비되어 있던 것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퇴사후 첫걸음마를 내딛을 때 도움을 줬던 이전 회사 직장 상사에서부터, 가능성만을 보며 중소기업지원사업 수주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모 실장님. (실장님이 아니었으면 오늘 내 위치가 여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류상으로는 무소속이신 OOO사장님, 늘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가 나타나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큰 힘을 받고 있다. 절대 퇴학이 안되는 '정학' 이사님께도 늘 감사하다.

덕분에 다시 좋은 기회다. 이전보다 비교하기 힘든 고생이 예감되는 프로젝트지만 수주가 된다면 내외부적으로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수주가 안되면, 이 글을 다시 쓸 자신이 없어,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로라도 블로그에 남겨야겠다.)

오랜만에 대학 동문회 까페에 들어가, 성제 형이 올려놓으신 시를 읽다가 웃어본다. 


지문

  -권혁웅(1967년생)
내가 모르는 일이 몇 가지 있으니
바위에 뱀 지나간 자리와 물 위에
배 지나간 자리와 하늘에 독수리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여자 위에 남자가 지나간 자리*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도무지 모르지, 손가락마다
소용돌이를 감추어두고 사는 일
손잡을  때마다 타인의 격정에 휘말리는 일
내 삶의 알리바이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개들은 짖고
먼지는 손에 묻고
버스는 떠나고
비행기는 하늘에 실금을 그으며 날아간다

나는 개를 먹고 개처럼 짖고

개털은 날리고 나를 따라
먼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고
내가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떠나가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길고 긴 타이어자국을 남긴다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흩어진 머리카락,

여기에 내가 아니면
네가 누워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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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정말 힘이 센걸까.
장문의 인터뷰 기사 중간쯤,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짤막하게 지나가는 문장 한줄.
마흔살, 메이저리그 마운드 서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실패한다 해도, 실패했기 때문에 삶은 스스로에게 훨씬 더 아름답고 행복할지도. 모를까.

일주일내내 새벽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다. 일이 얼마나 많은지.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이미 알고 있음'. 단답형의 자문자답.
일에 묻혀 스트레스 받았던 몇시간전의 일들이 모두 무덤덤해지고, 외로움도 무덤덤해지고, 
채 끝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언젠가 바닥이 보이고 그렇게 이 시간들은 지나갈 것이고. '힘들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던 것일게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마흔이 되면, 메이저리그 구장의 마운드에서 나는 열심히 공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던지는 공 하나 하나 모두 내 마음속의 마구. 
6회말 투아웃, 4-2쯤 평온한 박빙의 승부가 이어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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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2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신상범 2010/07/14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어찌해서 여기 왔네.
    참 오랜만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말...
    너를 응원하고 있다.

  3. 강도웅 2010/11/17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여기 있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세요.

    함께하는 사람.. ㅋㅋ

    건강하시죠?





누군가 기억해 줄 걸 기대하며
오르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내 발길 닿는 곳 마다
자신들의 이름을 꼭꼭 새기는
떠들썩한 환송연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내 몸무게만큼
저들의 일용할 양식을 지고 오르는
눈 덮힌 출근길
눈물 글썽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잠든 아이가 따라 밟을까

내 발걸음 지우며 가는 길
보릿고개 언덕, 에베레스트
찰칵찰칵 나부끼는 이국기 앞에
한 발짝 비켜서야 하는 나를
숨을 곳 찾는 바람은 기억해 주려나


이한주 선배, 1965년 생이니까, 올해 마흔다섯.
윤상원 문학상과 임수경통일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철도청 소속 1호선 전동차 차장으로 일하고 있고, 노동자 친구 2명 오진엽, 김명환과 함께 <일과시>라는 동인을 꾸리고 시집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학교다닐 때 동아리 선배다. 내가 재학했던 시절엔 이미 직장인이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몇번 만날 수 있었다. <평화시장>이라는 시집도 냈었고,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을까>라는 수필집은 재밌게 읽었었다.

동아리 40주년 기념행사가 끝나고 늦은 저녁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배에게 아는 체를 했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시집 한권을 건네준다. 그의 시가, 그의 목소리, 행동이 그리웠다.

3인시집 <설날기차표 예매>라는 시집에 들어있던 시. <에베레스트 세르파, 아파>

대한민국은 알고 있을까. 출판사도, 가격도 없이 하늘색 바탕위에 하얀색의 새 일곱마리가 날아가고, 앙상한 겨울가지의 가로수길을 지나는 기차 그림이 그려신 시집이 올 8월에 나왔다는 것을. AD2009년에 이렇게 가슴 뭉클한 시 한편이 소리소문없이 다른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회사에서 다시 시작한지 이제 만으로 1년이 되었다.
지난 모든 직장생활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1년동안 한꺼번에 받은 듯하다.
(토요일인 오늘도 지방에 출장갔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아무도 없는 빈 빌딩안에서, 시 한편 마음에 담아간다.
광영씨와 세민씨는 첫 아이를 잘 출산했을까. 전화라도 해볼걸 하는 마음 한켠.



이한주 선배의 다른 시 한편. 대학시절 동아리에 대한 회상과, 지금

흑석동 계단을 숨차게 오르던 내 스무살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천안 - 청량리 간 지하철 1호선 운전실에 잘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뱃살도 오르고
머리 빠지지 않는 것 말고는
덕분에 다 잘 있습니다.
써클룸 쓰레기통을 넘나들며
풋내 풀풀 풍기던 詩語들도
뒷베란다 먼지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성제兄 말씀 3장 16절이 낭송되던 그 때
둘레방 탁자 위에 넘쳐났던 소주병과 새우깡
그리고 담배 연기에 자욱히 가려졌던 革命
뭐 그런 거 다 잘 있습니까?


<
저 잘 있습니다.> - 이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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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sang 2010/02/13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트만두의 파상 세르파라고 합니다.

    우연히 검색되어...
    시로 접하는 세르파 이야기가 끝내 저며옵니다.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 촛불집회에도,
회사일로 바쁘다고 단 한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게 전부였다.

광풍이다.
입만 벙끗 해도 300만원 벌금형에 처해지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사회.
용산 철거민 참사에도,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되레 피해자를 잡아가는...
황금만능의 자본과 권력 앞에서 낙엽처럼 우수수 목숨은 떨어지고...

이제서야 그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껴야할 대통령이었는지. 만시지탄.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를 대통령 자리에 던져놓고, 모든 역할과 책임을 떠 넘겨놓고,
나는 방관자가 되어 버렸다.
선수로 뛰지도 않고, 심판으로, 관중으로 팔짱만 끼고 지내왔다.

잘 가시라. 당신. 미안한 당신.
많이 그리워 하게 될 당신.
이젠 내가 노무현이다. 아내가 노무현이다. 내 아이들이 노무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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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성식 2009/05/27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무현대통령의 글에 이런글을 쓰는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네요
    제가 티스토리를 시작하고싶은데 초대장이 없어서요..
    웹기획자가 꿈이라 블로그를 꼭 운영해야할듯싶어서요..
    초대장 있으시면 하나만 주시면안될까요??
    이메일주소는 ch5498@nate.com이니 가능하시면
    하나 보내주시길 부탁드려요




- 2007년 8월 8일 작성한 글, 미완성인 채로 이제서야 포스팅하다.


여름휴가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내와 나는, '화려한 휴가'를 보기로 하고, 아이들 일찍 재우기 작전을 세웠다. 퇴근시각이 늦는 아빠와 놀기 위해 밤 늦게까지 기다리며 노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들.
저녁밥을 먹이고 월드컵 경기장 시민공원에 나갔다. (차로 10분쯤은 가야한다.)
일반 주택에 사는 아이들에게 그네와 미끄럼틀만으로도 온 세상이 신나는 놀이터였고,
역시 우리의 기대대로, 공원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둘다 새근 새근 잠들었다.
(사실 아이들이 얼른 잠들지 않아서, 집 근처를 차로 2바퀴 돌았다. 아이들이 다 잠들 때까지.
 좀 치사한 방법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크면 언젠가 양해를 구하리라 . 너희들도 커서 애낳고 살아봐 아빠 심정 이해될 거야.^^; )

'태극기 휘날리며'

시민들이 계엄군의 몽둥이 맞아 죽어가던 처절한 장면에서, 내내 '태극기 휘날리며'의 백병전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그 시절을 살았더라면, 인민군과 국군의 산악 백병전에서, 나는 '장동건'도 아니었을테고, 원빈도, 공형진도 아니었을 것이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포탄이 빗발치던 황폐한 산을 넘어,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진격을 해야했던, 1초의 방심도 허용할 틈도 없이 총과 칼로 백병전을 벌이다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던, 피를 토하며 이름없이 죽어가던 그 병사였을 것이다. 나는 그 잔인한 장면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총칼에 잔인하게 죽어가는 내 자신의 모습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산을 뒤덮은 시체들, 영화가 한 장면으로 스쳐지나가버린 그 장면속에는, 내 주검과, 내 형제들, 친구들의 주검이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내 꿈과 희망들, 친구들과의 우정과 20여년 넘게 살아왔을 인생이 주검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엑스트라들이 심심풀이 흥미용으로 무수히 죽어가는 홍콩느와르 같은 영화를 싫어했었다.)

바보사, 다현사,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역사책 100권을 읽은들 전쟁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까. 사람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건, 전쟁에 대한 기억이나 상처가 아니라 전투에 대한 기억임을. 단 한줌의 '인간의 존엄성'이라도 무의미할 수 밖에 없는, 그 살육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이었음을, 나는 비로소 소름끼치게 받아들였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본 이후 비로소 나는, 대학시절 농활을 가서 만났던, 한국전쟁에 대한 마을 어르신의 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드리는 위로.

10일전만해도 평범하게 출근하던 직장앞에서, 담배를 사던 가게앞에서, 점심을 먹던 식당앞에서, 한국전쟁도 아니었는데. 이 전투(학살)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직장에 출근하고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 일상을...

한 도시의 영혼이 집단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온 도시의 사람들이 참여했던 백병전, 전투에 대한 기억과 상처.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친구를 하루 아침에 잃고, 오히려 폭도로 몰린 채 숨죽이며, 읍소할 수 없고 정당한 항의조차 할 수 없이,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폭도가 아니었음을,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목숨을 걸고 이웃들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대구출신의 김지훈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아직도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교 시절까지도 5.18을 '폭동'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주위 어른들에게서 들어온 이야기라고 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도 5.18을 폭동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을까. '폭동'이라는 명명은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어 한없이 오래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들, 망월묘역에 6월항쟁 만큼 높은 기념탑이 건립이 된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가슴속에 박힌 '폭동'이라는 인식을 아직도 모두 걷어낼 수 없음을 늘 뼈아프게 가슴앓이를 해왔었다.
영화 시사회때 5.18 유족들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눈물겨웠던 싸움.
영화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드리는 위로.

항쟁의 기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부터, 많은 작가들이 마음속에서 부채의식을 털어낼 수 없었던, 시와 소설을 넘어, 항쟁의 기록을 정면에서 생생하게 재연해낸 '화려한 휴가'까지.
배우 박철민은 인터뷰에서 "5월마다 나왔던 다큐멘터리·사진전·증언들, 이런 것들이 아닌 영화였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가장 큰 희망은 여기에 있다.
영화가 비록 '신파, 신파, 신파'라고 목청 높이 외치며 '흥행, 돈, 돈' 떠들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로 현장을 생생하게 재연해 보여줌으로써 이제 누구도 광주를 폭도라고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쓸쓸한 위로가 되었고, 그 것만으로도,  살아남은 도시의 사람들은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무너져 내려 엉엉엉 소리내어 울며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했는데,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아쉬움과 고마움.

에필로그

김지훈 감독에게 드리는 감사의 인사.
이 땅의 많은, 5.18의 실상을 모르는 이들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성공시켜주어서.
가장 잘한 캐스팅 - 이준기 (많은 여학생, 청소년들이 이준기를 보러 영화관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실패했다면, 끼리끼리만의 쓸쓸한 위로와, 또 한번의 설레임과 실망들.
그리고,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서 무수히 많은 '비평'과 비난을 한몸에 받았을지도 모를터.

실제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죽어간 이들은, 항쟁 지도부중에서도 학생시민군 지도부였다는 것. 여기서 그 유명한 윤상원 열사가 등장한다.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는,
아내 : 우린 폭도가 아니야
나 : 잊지말아주세요.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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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제목이고, 내용은 내용이고, 제목과 내용은 전혀 매칭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매칭시키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술 한잔 먹고 횡설수설하는 글이 쭈욱 이어집니다.

고은시인의 오래된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
제 메신저 제목으로 아주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백창우 시인(가수)이 좋아한다던 '눈 녹으면 땅 드러날 날 있을거야'를 메신저 제목으로 썼는데, 넘 가슴아파서...

이사를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다가, 아이들 육아로 부모님집에 얹혀서 한 3년 살다가 다시 아파트로 나왔습니다. 이번 아파트 무지 넓습니다. 무려 41평. 아무래도 평수를 고해성사를 해야 맘 편할 것 같아서.
(대출을 받긴 했지만, 이러고도 내가 외국인노동자 도와준답시고 깝죽대면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이러고도 봉사활동 하겠다고 깝죽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아내와도 많이 싸웠지요. 아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나주가 혁신도시 들어가면서 또 부모님 덕을 봤지요. 자식이란게 언제까지 부모 등골 빼먹으면서 살아가는지. 아이둘을 키우면서, 제 새끼들 위하는 건 금이야 옥이야 해도, 자기 낳아준 부모님 등골 빼먹는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늘 그런 죄송스러운 마음.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그런 날들. 그래도 맘 고쳐 먹고 살고 있습니다. (거실을 어떻게 꾸밀까 하는 순간부터 이기적인 욕심이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집값 보태주신 돈 절반 기부하자고 했다가, 싸이코 취급받았습니다. 중소기업 월급쟁이 주제에 큰 소리 뻥뻥쳐봤자 돌아오는 건, 깨갱깽깽 소리 밖에. 언젠가 가진 것 모두 드러내어 함께 나누는 삶이기를 소망하고, 노력합니다.
생존을 위해 하루 하루 노동하는 이 땅의 이웃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고백합니다.

여하튼, '거실을 서재로' 귀가 솔깃했습니다.
이사 첫날은 마치 남의 집, 빈집에 불쑥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는 것처럼 이상했습니다.
둘째날, 아, 여기서 10년 20년을 살겠구나.
이곳에서  흰머리카락이 머리를 반쯤 덮고, 이곳에서 은결이와 진모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어떻게든 대안학교에 넣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지만) 그렇게 한 세월 늙어서,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을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나의 삶의 가치가 풍요롭게 향내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1. 거실을 서재로.
2. 거실이, 놀이와 문화와 삶이 뒹구는 생의 공간으로
3.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폼나는 공간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기뻐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뭐 그렇게 거창한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써얼렁 합니다. 거실에 걸어진 것이라곤 벽시게 달랑 하나.
한쪽 벽면에는 조립식으로 된 책꽂이를 두고, 거실을 도서관처럼, 놀이방처럼 꾸며보고,
가수 김광석의 공연사진 두어장, 그리고 문목사님 사진 두어장을 걸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시그림을 걸어놓을 예정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 곽재구 '은행나무'를 걸어놓고, 안도현의 '사랑한다는 것' 이런 시도.
어렸을 적,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고모가 가져왔나 싶은, 김남조의 '후조'라는 시가 벽에 걸어진 것을 보고, 아, 사랑은 이렇게 쓸쓸하고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은결이와 진모한테도 도움이 될 시들.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이 시도 걸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초대합니다. 상바라바라샘네 가족. 예나네 가족, 애 아빠가 될 명진,순영 가족.
이곳에 오는 모오든 친구, 후배들. 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광영,세민부부, 규완,자현부부 도 진작에 초대장을 놓았습니다.
방4갭니다. 이제 거실에서 안자도 됩니다. (평수가 넓으니깐 그건 좋네요.)
인생 여행하는데, 이 작은 도시, 하룻밤 묵어가는 주막이라고 생각하고 함 들렀다가 갔으면 좋겠습니다.

음...
가수 김광석 사진은, 예전 한겨레신문 사진기자였던 임종진 작가(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긴 했는데, 답메일이 없는 걸 보니, 제가 급한 욕심에 사진달라고 떼썼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문목사님 사진은, 명진이한테 부탁해놨는데, 한 3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서 직접 뛰어볼 생각이고요.
집을 꾸미는데 한 1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두 모여서
아름다운 꽃으로 만개하고, 와아, 하아 아름답다, 하는 생의 절정의 순간까지.

쩝...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보니.
김남희 작가가 얻었다는, 여행에서 돌아와 '이토록 단호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확인하는 며칠을 보낸 후 겨우 작고 초란한 방 하나'가 생각납니다.
(음..짜식, 우왕좌왕 마음의 갈피를 못잡는, 소심한 짜식, 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들...)

사진을 올려야지요.
거실이 하나씩 완성이 되면 사진을 올릴 계획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이웃들이 오늘 밤 다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술한잔 걸친 오늘의 횡설수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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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elim78 BlogIcon 슈퍼딱지 2008/04/01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사진 보고 싶어요.. 얼른 집 꾸미시고 사진 올려주세요.. 뭔가 기대가 돼용.. 광주도 가고 싶고 물꼬도 가고 싶고... 아... 가고싶어라...

  2. Favicon of http://5feel.pe.kr BlogIcon blue 2008/05/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하셨군요. 전 설 살이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사람냄새나게 살고 싶은게 그게 안되네요....
    사람이 갈수록 까칠해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피해보는게 싫고 싫은 이야기 듣는것이 싫으니까 사람이 갈수록 까칠해지는것 같습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일 어린이날까지 휴일이라 광주에 내려왔습니다. 모아놓은거 하나없고 허울만 멀쩡한 직장 다니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뭐라 하시면서도 멀 그리도 많이 먹일려고 준비를 하시는건지....
    참 사람노릇, 자식노릇 힘들다는 사실을 오늘도 머리에 이고 삽니다.
    축하드리구요. 부디 그 집에서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기길 빌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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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를 구매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액센트를 한 20년 타고 다니겠다고 아내한테 큰 소리친지 만 2년이 지났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중고차를 구입하게 될 이 땅의 길치, 기계치를 위하여.

나름대로, 길치, 기계치여서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남들보다 마음의 여유를 한뼘쯤 더 가질 수 있어서 편하다.

다만, 기계치가 기계를 구입할 때는 여기 저기 신세를 져서 정보를 얻어 구입해야하므로, 돈이 많거나, 돈이 없다면 품질좋은 인간성이라도 갖춰야한다는 것을 쓴약을 먹듯 경험으로 배웠다.

김시창님 사진.

나는 그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글을 올린 후 한 번의 전화 통화를  했을 뿐. 차량이 구매되고 나면 서울과 이곳이라는 거리 때문에, 몇차례 문의 전화를 할 것이고, 그렇게 직접 만나지는 않은 채 서로 잊혀질 것이다.

나 같은 기계치, 길치에게는 중고차 사는 일도 사람의 마음을 구하는 일이다.

< 그의 프로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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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http://www.kimsichang.com
한겨레신문기사 : 상식이 통하는 한겨레 독자는 반가운 내 고객


아래 글은 김시창 닷컴에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올렸던 글이다.
..................

차량구매 문의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차량 구매 문의드립니다.

- 개인정보 -
1. 이름 : ㅇㅇㅇ (ㅇㅇ세)
2. 이메일 : ㅇㅇ@ㅇㅇ.co.kr  
3. 휴대폰 : 010-6219-ㅇㅇㅇㅇ
4. 사는 곳 : ooo

- 구매를 원하는 차량정보 -
1. 차량예산 : 650 ~ 700만원
2. 차종 : 아반떼
3. 옵션 : 파워핸들, 오토
4. 기타 : 내외관이 좀 깨끗한 차
5. 용도 : 출퇴근용, 외근용(영업용은 아닙니다.) 다만 거래처 사람들을 가끔 태우는 경우가 있어서 파손상태 등이 가급적 없고, 내외부가 깨끗했으면 좋겠습니다.
6. 주행거리, 연식 : 판단이 안서서 잘 모르겠습니다.


위의 예산으로 차량  문의드립니다.
2006년인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기억해두었다가 어찌어찌해 사이트를 찾아왔습니다. ^^ 운전대를 잡은지 10년이 다되어 가지만 차에는 거의 깡통입니다.

skencar, 몰던카 등등을 훑어봤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네요.
차를 처음 사는 사람이라고 여겨주시고 안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김시창님을 통하여 구매를 하고 싶은데,  거리가 좀 있어서 가능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1. 차량 구매비용외 다른 비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등록세(취득세?), 보험료는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타 수수료, 이동시 유류비도 있을 것 같고요. 차량 구매와 함께 들어가는 총비용이 얼마나 될지요.(보험료 제외)


아래글은 기타 그냥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
차는 아내 명의로 아반떼 XD 디럭스 한대 있습니다. 2002년식입니다. 제가 아반떼를 사려고 하는 이유가 몰아본 차량이, 르망, 누비라, 액센트, 아반떼 정도인데, 아반떼가 가장 무난할 것 같아서 아반떼로 결정했습니다.

95년식 액센트를 2006년 초에 구입하여 한 2년 타고 다녔습니다. 파워핸들도 아니고, 수동기어라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파워핸들이 아닌게 그렇게 불편한지는 몰랐습니다.)
100만원정도 주고 구매해서 수리하는데 20만원정도 들었습니다. 수리하면서 정비소에 물어보니, 공짜로 남 주면 모를까 돈받고 팔기는 어렵다는 차량인데 120만원이나 주고 구입한 셈입니다.^^
3월 14일까지 정기점검이 나와서 폐차를 할 예정입니다. 아직 차량 상태는 쓸만합니다. 차도 잘 나가구요(대리운전 기사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말합니다.^^)
같은 액센트를 모는 동료직원이 있어서 폐차하면서 타이어(1년미만 새타이어)만 동료직원한테 넘겨줄 생각입니다.

액센트는 찌그러지고 깨지고 한 부분이 좀 있습니다.
새로 구입하는 차량은, 내외관이 좀 깨끗한 차량이면 좋겠습니다. 대충 skencar 보고 예산을 책정했는데, 예산으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험은, 기존 액센트 보험을 해지하고 신규로 다시 가입하거나, 그 전에 차량 구입이되면, 차종을 바꿔서 보험을 갱신하려고 합니다.

제가 차에 대해서 정말 젬병입니다.
2002년 구입한 새차 아반떼의 계기판(기름, 속도, RPM)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제대로 볼 줄 모릅니다.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것도 한번 해보고 잊어버려서 손으로 맞추고요. 100% 기계치입니다.
엔진오일(4천~5천), 미션오일(1년) 갈아주는 정도. 와이퍼 교체하는 것 정도만 가능합니다.
운전은 익숙하게 하는데, 길 찾는 것은, 10분거리 외근나갔다가 회사를 못찾아오거나, 퇴근길에 직원 데려다주고 집에를 잘 못 찾아갈 정도로 길치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에만 15년 넘게 살았는데 말이죠.^^). 고속도로에서 인터체인지에서 역주행 경험도 있습니다.

차는 아무래도 제 관심종목이 아니라서 그런지 매뉴얼보고 한두번 따라해봐도 금방 잊어버리게 되지요. 그냥 외관 멀쩡하고 잘 굴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차량의 미세한 소음이나 특별하게 보는 건 없습니다.
차량만 멀쩡하다면 한 20년, 망가질때까지 고쳐가면서 타고 다닐까 합니다.

.........
쓸데 없이 글이 길어졌습니다.
가급적 모든 정보를 전달해드려서 차량 구매하는데 한숟가락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남겼는데 엉뚱한 내용만 적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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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7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flyspace.co.kr BlogIcon 다시 광장에서 2009/03/21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이버에 가셔서 김시창닷컴으로 검색하시면 사이트가 나옵니다. 확인하시고요. 그쪽으로 문의바랍니다. 저는 구매자입니다.^^;




노래이름 : Gracias a la vida
부르는 사람 : 비올레따 빠라의 목소리인지,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인지 구분이 안감
                    존 바에즈 목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 하늘길 걷는 사람 (
http://www.skywaywalker.com)

먼저 노래를 들어본다.

(가사를 읽어가면서 들어보는 것이 최고로 좋을 듯.)

  '블로그에 노래 퍼갑니다.' 한마디 남기고 허락없이 가져왔다. 즐겨찾기에 넣어두고 때때로 방문하면 우울한 날 가랑비 맞는 느낌처럼 센티멘탈(?)해지거나, 신신파스를 붙인 것처럼 마음이 상쾌해지거나, 아뭏든 정신건강과 위로에 도움이 많이 된다. 나는 그녀의 책을 통해 그녀를 알고 있지만 김남희씨는 나를 모를터^^, 언젠가 상업, 비상업 모두 포함해서 홈페이지나 블로그 탐방기 글 같은 것들 써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물꼬(freeschool.or.kr)와 함께 첫번째 글을 다투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사보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할 것 같다.

  김남희씨의 글에 의하면 스페인어인 듯 싶다. 칠레 교포이던 대학동기, 오세발이라고 가끔씩 불렀던 세민이 생각이 난다. (흥부와 놀부, 심청전 스토리를 섞어서 이야기 해줬더니 진지하게 경청을 했더랬다.)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영어도 안되긴 하지만^^;;)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al hombre que yo am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눈을 뜨면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빛나는 별,
그리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사랑하는 이를
또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눈을 주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oid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ias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a de mi bien amad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 망치소리, 터빈 소리, 개 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밤낮으로 새겨 넣을 수 있는 넉넉한 귀도 주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con e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ru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의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단어와 소리와 문자도 주었지요.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es cansados
con ellos anduve ciudades y charcos,
playas y desiertos, montanas y llanos
y la casa tuya, tu calle y tu pati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피곤한 발로 전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당신의 집과 거리, 그리고 당신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el corazon que agita su marco
c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humano
cuando miro el bueno tan lejos del malo
c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악에서 멀리 떠난 선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 그 깊은 곳을 응시할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을 내게 주었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ustedes que es el mismo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io cant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을 주어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슬픔과 행복이 내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그 노래는 당신들의 노래이기도 하며
모든 이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포탈에서 Gracias a la vida 로 검색해보면 비올레따 빠라의 극적인 삶의 이야기,  메르세데스 소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체게바라'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남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노래의 감동이 배가된다.
우리에게 아죽 익숙하게 노래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리듬의 청중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처음 이 노래를 접했을 때도 지금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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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하며)”

    FROM Oliver 2009/02/12 19:46  삭제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y en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y en las multitudes al hombre que yo amo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눈을 뜨면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빛나는 별,그리고 많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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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w.skywaywalker.com BlogIcon skywaywalker 2008/01/16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노래는 소사의 음성이랍니다.
    가볍고 맑은 비올레타 빠라의 노래도 괜찮지만
    역시 한 세월 세상과 함께 치열히 살았던 소사의 묵직한 음성이
    이 노래에는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과분한 칭찬, 고맙습니다. ^^;
    블로그 잘 둘러보고 갑니다.
    지나간 시절이 생각나 가슴이 아련해지네요.
    가슴 속 품은 꿈,
    꼭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 광장에서 2008/03/07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답글을 달 수 없을만큼 설레는 댓글이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친절하게 설명까지 남겨주셨네요.

      다른 나라 어느 마을쯤 머물러 있을 김남희님을 떠올립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 ksk 2009/01/14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사 좀 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참, 다 쓰고 며칠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 글을 트랙백이었다.
한 때 '바닥에서도 아름답게'라는, 곽재구 시인의 시 제목을 따서  홈페이지를 꾸렸었던 벗.
그 벗의 홈페이지에 답글로 달기에 너무 길어서 트랙백으로 남긴 글.
대한민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등불 하나 켜고 사는 예나네 가족이 있음을 알게 되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도 부쩍부쩍 환해지리라.
예나네 블로그 : http://blog.naver.com/helim78



지역에서 먹고 사는 선뱁니당.

사는 일은....
일상은 계획에 대한 설레임의 반복이고, 워커홀릭도 아닌데 쏟아지는 업무와 펼쳐보고 싶은 업무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그럭저럭', '대충대충' 요건 절대 아닌데... 복잡합니다.
자동으로 주어진 프롤로그(태어남)에 이어 스스로 기획하는 삶의 두번째 프롤로그를 쓰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입니당.
반복된 패턴의 일상이 아주 장기화되리라는 것 때문에 한번쯤 쉬었다가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시 한편 쓰는 일은 ..
눈물겹도록 시 한편 쓰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당. 워커홀릭도 아닌데, 10월, 11월은 잔인하게도 제게 시 한편을 허락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만, 12월은 기어이 세편의 축시를 허락해줄거라 믿습니다. 아멘.
축시를 쓰는 시간동안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기쁜지, 명치 끝 저 깊은 곳에서 오는 찔끔 눈물, 그 무한한 까따루씨쑤.
한번 맛보아야 살 것 같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블로그의 위태하고 평온한 바람을  일순 깨뜨릴 것 같아서 늘 눈팅만 하다 갔습니다.
이곳에 와서 비슷한 세계에 사는 사람이야기만 읽어도 가을저녁 공원에 산책갔다온 기분이었지요.

엊그제 동문의 밤에서도 예나어머님(^^)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더랬지요.

오늘은, 걍 갑자기 용건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주소가 알고 싶어졌습니다. 소포를 받을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결혼6년차 아이 둘을 가진, 부부싸움 횟수 선배가 머얼리서 마음을 포장지로 싸서 뭔가를 보내보려는 꿍꿍이속입니다.
OpenSpace21이 FlySpace.co.kr 로 바뀌었습니다. 한번만 더 비밀글로 다녀가시면 어떨까요?
걍 다녀가삼.

모두 모두 다 반갑습니다. 반갑스음니다아~~ 반갑스음니다~~
블로그에 스쳐간 숯불바베큐양념무뼈치킨, 반갑스음니다~~
배달청년 반갑스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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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4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flyspace.co.kr BlogIcon 다시 광장에서 2007/12/08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가워.
      동문의 밤에 가긴 했지만, 돌 쯤 됐을 아기를 놔두고 오기에 힘들거라 생각했었지. 괜히 부담줄까봐 연락안했었고.
      그렇지.
      예전에 많이 아팠지.
      근육경색증 비슷한 것이라고 했던가, 근육이 수축되어 통증이 오는 병이라고 해서, 아프긴 했지만, 이제 괜찮은 것 같고, 그보다 마음이 많이 아팠지. 한달정도 정신과 병원에도 다녔으니깐. 그땐 뭐가 그렇게 많이 아팠을까^^.
      시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걱정이 많은가 보다. 뭐 위로가 되어주긴 힘들테니까, 날마다 하루 하루 감사하며 힘내길 기원하는 수밖에.
      삶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된 예나.
      눈에 넣어면 시리도록 눈물이 날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아기와, 예나 엄마에게, 응원, 또 응원.

      '평일 낮에 휴가'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네.^^
      예나도, 예나 엄마도 늘 씩씩하고 건강하기를...






11전 12기로 선거에 당선된 의지의 한국인.
회사일 때문에 보궐선거에 참여하지 못했었지만,  투표했다면 나와 아내는 강도석에게 한표씩을 던졌을 것이다. 부모님은 강도석에게 한표를 던지셨다. 이제 한번 밀어줄 때가 된 것 같다고.
정말 기대가 크다.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난다 해도, 그가 가진 기개와 투혼이 마음껏 불타올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민주당'이면 당선된다는 심장부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걸, '선거인단'으로서 늦게라도 진심으로 축하, 축하, 축하드린다.

네이버에서 '강도석'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벌써 시청과 맞장을 뜨고 있는 기사가 올라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기사의 사연은 대충 이렇다.
광주에 특급호텔을 짓고자 하는데, 그것은 시청이나 지역의 오랜 소망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지역 건설업체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특급호텔이 없어서 '특급'행사의 유치가 어렵다는 지역신문의 지원기사도 심심찮게 올라왔던 터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특급호텔 신축시 건축 및 운영상의 적자보전을 위해서 시공업체(건설업체)에 '혜택'(이라고 표현하는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뭏든 이익보전)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강도석 시의원이 그것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대단~!!, 여기서 별다섯개를 확 줘버리고 싶다.

잘되는 일에 딴지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시공업체' 자리를 따내기 위해서 영업활동도 치열했을 것이고, 사업공시가 나기도 전에 이미 '용도변경'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스토리가 진작에 만들어졌을 터. 막대한 꿀(이익)이 있는 자리에, 벌떼처럼 무수한 사람들의 흔적이 지나쳤을 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들 눈 감은 척 자질구레한 것으로 여겨지는 부당한 것들에 대해 그냥 지나쳤을 터, 이 좁은 광주 바닥에서 튀어봤자 자신만 왕따될 것이고, 어느 똑똑한 작가는, 지방자치제도가 지역민의 참여자치를 실현한 게 아니라, 지역토호세력의 영구토착화를 가져왔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중앙정부에서도 터치하지 못할 정도록 견고한 세력을 구축해버린...

강도석은, 그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지자체 수장의 힘은, 중앙정부 대통령의 권력보다 영향력이 더 막강한 법. 학연, 지연, 혈연을 기반으로 맺어진 이 끈끈한 바위에 계란으로 부딪쳐 가는, 한 이름없는 열혈전사에게,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라도  박수~~~

그는, 그의 사무실 앞에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놨다.  '역사는 무엇으로 불타오르는가' 하고 묻고 있다. 밑에 '시의원'이라는 말이 없으면, 타지 사람들은 아마 국회의원쯤으로 언뜻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시의원'이 '역사'를 불타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오바'다. 아니 '오바'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오바'일지라도, 그의 진정성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꼭  '오바'를 성공적으로 실현시켜주기를 바란다.

내가 '강도석 시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1995년 '6.27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를 때였다.  공익근무요원(제도의 수시변경으로 여차 저차 사연은 길다.)으로 4주훈련이 끝나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후보들은 다 한번씩 선관위 사무실에 직원들(당시에 사무장 포함, 여직원1명 포함, 5명) 격려차 들렀었다. 격전지가 아니기 때문에 선거는 늘 평화로웠고 (말뚝만 꽂아도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나를 포함해 세명의 공익근무요원과 직원들은, 30명의 당선자준비, 80여명의 후보등록자 등으로 인해 아뭏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는데(거의 매일 야근) 운 좋게 유세장에서 '강도석'의원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의 초딩시절부터 늘 동일한 지역에서 선거에 출마했던 그, 더군다나 그의 사무실이 우리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시절'에 늘 그가 궁금했었다. 도대체 선거때마다 안 빼먹고 맨날 나오는, '민주당' 간판도 없이 '무소속'으로 나오는 그의 속내는 도대체 뭘까. 물론 지금도 그 속내는 알 수 없다.^^

유세 순서가 되어, 연단에 오른 강도석 의원, 날 계란 두개를 손에 들고 있더니, 연단앞으로 하나를 툭 던졌다. '저의 첫번째 도전(꿈)이 깨어졌습니다. ', 몇 마디 말을 하고 다시 두번째 계란을 던지더니, '저의 두번째 도전(꿈)이 깨어졌습니다.'  뭐 이런 대사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호~~~' 이럴 수가, 예술가네~~~.

흡사, 작은 백기완의 연설을 보는 듯, 그의 웅변은 대단했다. 청중을 휘어잡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손짓, 카리스마가 넘치고 기개가 대단했다. 나는 거기서 '강도석'이라는 인물의 진정성, 아니 그가 내뱉는 말들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투혼을 볼 수 있었다. 공약이나, 정책, 비전 이런 내용으로 연설이 채워진 것은 아니고, 자신의 꿈과 이상, 도전과 좌절 뭐 이런 내용으로 채워진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돈기호테, 그가 가진 꿈과 희망이 진실하고 소신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 체면과 형식, 가식, 허위의식을 벗어던진 것만으로도 이십대 초반인 내게는 후보들중 군계일학이었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당시에 내 어린 생각에는 구청장이나 국회의원 자리에,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뚜렷한' 경력이나 실적이 없는 그를 무턱대고 찍을 수는 없었다.^^   당시에 여러모로 경력이 검증된 후보들도 꽤 있었으니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능력을 드러내지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표 던지기에는, '시행착오'의 댓가가 큰 법.

12전 1승 11패, 19년의 세월동안 11패를 안고 마침내 그는 1승을 이뤄냈다.
그의 당선소감도 멋지고, 당선증을 안고 감회에 젖는 모습도 참 아름답다.

이제 좌충우돌 그의 시의회 활동기를 보는 것이 큰 재미가 될 것 같다.
한판 승부로 모든 것을 다 혁신할 수는 없으리라. 의욕이 하늘에 닿아 있는 만큼 때때로 실수도 있을 것이고. 지혜가 강물처럼 흘러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최선을 다해 멋진 삶을 살아주기를.

강도석 시의원, 그가 만들어가는 역사가, '무엇'으로 불타오를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멋진 강도석 의원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타지 지역민들이라도, 많이 많이 응원해주시라, 여기 한 멋진 '사내'가 '역사'속에 서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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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삼성전자 매스게임 동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우리회사에서 삼성SDI로 이직한 벗이 있어,  매스게임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6개월여에 걸친 연수교육이 끝나고 부서배치 받기전에 잠깐 짬을 내서 우리 회사에 들렀던 그, 그와 나는 회사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였다.

'싱싱한 영혼이여, 오래 오래 건승하라'
매스게임 동영상을  두세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몸이 들썩들썩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나도 함께 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어울려 그 싱싱한 젊음을 나누는 자리에 나도 끼어 있다면 하는 부러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이  '삼성전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신념과 가치관,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이 우루루 벌떼처럼 함께 모여들어 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서로의 몸을 비비며 미래의 비전 한 꼭지를 공유하며 뜨거운 열정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인가.
물론 '적극적인 동지'가 아닌 '회사원'으로 모였지만, 대부분 20대 중후반인 청년들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사원으로서 그 첫마음은 얼마나 뜨겁고 설렐 것인가.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는 그런 '참여의 기회'가 부러웠다.


'강경대'로부터 시작해 김귀정, 박승희 ...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대의 폭압에 스러져갔던 전대협 마지막세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학교 강의실에서 잠을 자고, 출범식을 맞이했을 때, 그 아름다운 장관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수만명의 청년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어내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율동을 즐기던, 그 수만명의 하나된 함성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던 경험.
( 92년 서태지의 등장, X세대 논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80년대 대학세대와는 또다른 문화공동체가 당시 우리 의식의 한 지지대이기도 했었다. )
몇년전까지는 가끔 안치환이 무대에 선다고 하면, 대학축제에 놀러가곤 했었다. 그곳에서도 그런 '집단의 아름다움-젊음과 문화의 공동체'가 있었다.
이제는 야구장에 가서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 가끔 그런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문부식)'이라고 했던가.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일 것. 서울에서 생활한다면 대학로에 자주 놀러가고 했을텐데, 지방이라 그런 기회가 없어서 많이 아쉽다.

대학졸업반 시절, 삼성전자 입사시험을 본 적이 있었다. 운좋게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SSAT를 거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전공면접'과 '인성면접'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전공면접에서 나는 '반도체 극성'에 대한 부분을 선택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했었다. 프리젠테이션 끝나고 면접관이 던졌던 질문이 기억난다. PNP, NPN 에서 전자가 어떻게 끌려가는지... 그 때 나는 마땅한 표현이 없어, 손짓을 동원해가면서 "Collecting 한다"는 표현을 했었다.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터라, 가급적 모든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의도적으로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용어를 바꾸어서 설명했었는데, 결국 표현이 막히자 Collecting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다른 면접자들은 전부 영어로 용어를 표현하는데, 나만 우리말로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억지스럽기도 했다. 음. 친구들은 다 원서로 공부했는데 나는 주로 번역본으로 공부한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 이력서에는, 항상 고등학교 졸업후 대학입학까지 3년의 '서류상의 공백'이 있다. 전공면접시간에 한 면접관이 그 공백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고, 솔직하게 답변을 했었다. Student movement로 가장 유명한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고.
몇가지 질문들이 오고가고,

"삼성에는 노조가 없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상된 질문이 나왔다. 사실 전날 밤잠을 설쳐가며 거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답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정답은 없었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여유있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삶, 그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의미의 답을 했더랬다.

그 면접관의 환한 얼굴이 기억이 난다. 3~4명쯤 되던 다른 면접관들은, 계속 이어지는 면접 '업무'에 다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었는데, 그 면접관만은 부처님처럼 얼굴이 환히 빛나고 면접자들에게 눈빛을 맞추고, 활기에 차 있었으니까.
(TV에 자주 나오는 조연배우를 닮은, 배우를 해도 될만큼 핸섬한 얼굴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 얼굴을 찾으라고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새파랗게 젊은, 입사 면접자에게 '삼성노조'라는 질문을 뭐 심각하게 던졌을리는 만무하겠지만, 함께 면접을 봤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 논란이 분분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해에 결국 입사시험에 합격했을까, 떨어졌을까^^

나는 지금, 지방에 있는 한 IT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개발자에서 막 벗어나 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 잡지, 신문, 책, 학습, 가투로 익혔던 삼성은 '공공의 5적'이었는데(지금 생각하면 나의 이해와 인식이 얼마나 경직되고 피상적인 것이었는지 우습기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꽤 진지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내 회사 책상의 책꽂이에는 '삼성관련 서적'들로 가득하다. '삼성'에 관한 책이라면 웬만한 책들은 거의 모두 구입해서 읽어가고 있는 중이다. (개인사정으로 입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런 질문과 답변에도 그 해에 나는 삼성전자에 최종합격을 했고, 유성에 있는 연수원에서 며칠간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도 했다.)

한국현대사에서 삼성, 현대로 대표되는 재벌기업성장사에 대해서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냉철하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좀더 확대하자면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기여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중소기업 IT개발팀중 한팀의 팀장으로서, 삼성SDS, 티맥스소프트, 안철수 연구소, 구글 등은 내게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조직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점. 소속된 직원들의 뛰어난 마인드와 역량을 배운다는 것은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건 우리 팀과 부서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까.
회사생활을 하려면, 세상 어디에서나 언제나 치열하게 살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 정말 뼈저리게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치열함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열심히 배워야 하리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결국, '삼성'의 문제를 '구성원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든지, 고정된 이미지 틀(물론 그 이미지 틀은 언론방송, 본질적으로 삼성으로부터 나온 것이겠지만)에 갇혀 굳이 무리하게 삼성전자 매스게임을 재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볼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일 것이고, 나는 거기서 '역동하는 젊은 청춘들의 싱싱한 집단적인 아름다움'이 혹여 다른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압도할 수 있을만큼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본 제목처럼, 그 설레는 첫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건승하기를 기원한다.
개인만의 쾌락과 안락을 위해서 보다,  집단(공동체)의 목표와 비전을 위해서, 또 그것이 개인의 것과 일치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 매스게임 동영상' 에서 '삼성전자'가 아니었다면,
만약,  '유한킴벌리 매스게임 동영상'이었다면, 우리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XX회사'라는 명칭(소속) 때문에 그 매스게임 동영상에 180도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엉뚱한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백만불짜리 열정(이채욱)에서 보면, 사원에서 팀장이 되는 순간이 직장생활의 과정중에 가장 설레는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다고 한다. '지시받은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에서 업무를 '기획'할 수 있는 가장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는 다른 한명의 팀장을 포함해 15명의 팀원이 있다. 이직률이 높은 중소IT기업이고, 지방업체이긴 하지만, 안연구소, 티맥스,  삼성SDS를 넘어서는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의 구글을 꿈꾼다. 각각의 팀원들이 평생 직장으로 삼고싶을 만큼 키워나가고, 백발이 성성한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이 20대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열정과 꿈을 다할 수 있는 곳. 10년이나 15년쯤 뒤에는 우리회사 남미지사장, 중국지사장, 러시아지사장 등 아직 미개척시장으로 나가 해외지사장으로 매출액 500억, 1000억을 이루어 보고픈 꿈도 있다. 지금  동고동락하는 팀원들과 함께 그런 꿈들을 이루어가고, '모두 모두 즐거워 떡도 먹고 술도 먹고'
(아, 그 과정중에 설레는 목표 하나, 대한민국 최고의 '사보'를 직접 만드는 것. 지금까지 그 어떤 유명한 사보도 흉내내지 못하는 가장 멋진 글과 그림이 실린 사보. 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 때까지 열심히 할 것. 삶은 누적이지 대박이 아니라는 것. 지금 당장 진행하는 프로젝트 멋지게 완수할 것. 최소한 1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

그리고, 멋진 귀향.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고향(나주시 금천면 동악리)을 대신해,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 대안공동체 마을로의 귀향.  '이익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곽재구)지 않아도 되는,  '느림의 미학',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는, 섬김, 나눔, 연대, 실천. 그런 아름다움을 꿈꾼다.
꿈은 머지 않아 실현되리라. 그 과정에 서 있는 매 순간 순간들이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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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7/07/06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경대,김귀정, 박승희 그 이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힘 내세요.^^
    팀원들한테 잘해주시구요.^^




몸과 마음이 많이 황폐해졌다. 원래 이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러다가, '뼈 아픈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잠깐만, 아주 잠깐만 하고 미루어둔 일들이  '마른 장작처럼' 쌓여만 간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한달에 한통씩 쓰자고 스스로 약속했던 편지글.
은결이와 진모에게 한달에 한번씩은 글을 남겨두리라 약속했던 것들.
'최강팀의 7가지 성공전략' 이런 류의 책들에 밀려 1년 가까이 사무실 책상에 꽂혀져 있는, '문익환 평전', 김형수의 책들, 김형경의 책들.
우울할 때마다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했던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모를, 강금실의 '서른의 당신에게'

"임대리님, 시골에서 엄마가 올라와 한시간정도 늦게 갈거 같아요."
"용봉91승철(수배중)부인출산. 들솔도움필요. 91이상3만원.ㅇㅇ은행 074..."
"12월19일우리딸이2주나빨리나왔어요 축하해주세요~~전목다쉬고탈진상태랍니다..^^"

휴대폰의 문자메시지에는 미처 답장을 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쌓여간다.
승철이, 아직도 현장에 있으리라 생각하던...

치열하게 살지 않고서는, 그곳이  어디든지 살아남을 수 없으리란 걸 빠르게 체감하고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도 더 절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매 순간순간마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바보같이.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조금만 더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내년에 아파트로 이사가면,
회사일이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너무 늦지는 않을까.


어떤 마을
                -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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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오후 6시 40분.
회사차를 끌고 시청에 들렀다가 sk건설 현장사무소에 왔습니다.
족구를 열심히 하는 현장직원들 멀찌감치 차를 주차시켜놓고,
아, 날 따뜻해지면 족구좀 했으면 좋겠다,
네트로 공 넘어다니는 거 구경하며
들어선 사무실 썰렁했습니다. 약간 당황.
담당자인 우과장님, 주차장을 보니 족구선수로 이마에 땀 뻘뻘 흘리며 뛰고 있습니다.
사무실안에 서서 멀리 손짓 고갯짓을 하니 인사는 받아줍니다.
한게임 끝나고 들어오시겠지. 족구하는 풍경을 보니 그래도  마음도 여유롭습니다.
얼레, 코트 바꾸고 2세트합니다.
옆에 있던 지양근 건축기사 왈, 2세트 끝나면 결승 해야 될 것 같답니다.
아~, 주머니속 담배를 찾았습니다.
빈갑입니다.
회사차 운전석 옆에 The One 있는거 봐뒀습니다. 아마 김이사님 담배인 것 같았습니다.
담배에 관한한 놀라운 집중력과 기억력, 담배위치 기억은 귀신입니다.
주차장에 가  회사차 문을 열고 담배갑을 집습니다.
흐음... 빈갑입니다.
그 때 족구 3세트 끝납니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데...
다시 사무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디자인팀 광영씨한테서 전화옵니다.
'김정민대리님이 일요일 교육정보원 일 가서 받아온 일당', 삽겹살로 쏜답니다. 빨랑오랍니다.
갑자기 배가 고파집니다.
계약서 작성합니다. 도장 막 빼먹고 찍습니다.
(옆에서 우과장님, 지양근기사님 나서서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합니다.^^)

이제 회사차 끌고 돌아갑니다.
'목표 게시물' - '표지판' 시청
타겟을 잡았습니다.  벌써 3~4번은 다녀간 길.  눈만 부릅뜨면 회사로 돌아가는 길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늘 봤습니다. 고가도록 같은 큰 길을 쭈욱 가다가 '시청'이라고 써진 표지판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새면 됩니다.
날은 어두워가고,
광영씨는 또 전화를 하고,
한 참을 가다보니 표지판 글씨가 모두 페인트로 지워져 있습니다. 지금 공사중인가 봅니다.
그래도 시청 나오겠지, 설마... 계속 달렸습니다. 바람이 상쾌합니다.
'페인트로 지워진 표지판'은 없어졌지만, '시청' 표지판은 안나옵니다.
'ㅇㅇ여대 가는 길'이 보이고, 호대 캠퍼스 가는 길이라는 것도 보이는 듯 합니다.
이대로 쭈욱 가면 지구 한바퀴 돌아서 올 것도 같은데,
가스차인지, 휘발유차인지 연료도 반칸밖에 안남았습니다.
차량에 장착해뒀다는 GPS는 시속 13킬로미터만 넘어가면 '티잉, 티잉, 티잉' - 숨도 안쉬고 울려댑니다.


결혼하고 처가(강진)를 갈 때 때때로 나주를 지나쳐 목포로 빠졌던 옛 추억이 생각납니다.
낮에 갈 때 다르고, 밤에 갈 때 달라서 낯익은 길도 늘 새로운 여행길이 되어 줍니다.
시내 현대극장에 영화보러 갔다가, 천변을 여섯바퀴를 돌았던, 아름다운 데이트가 떠오릅니다.
가보면 좌회전이 안되고, 가보면 맞은편이었던 드라이브의 추억.
아 아,
길위에서의 겪은 절정의 추억,
이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드라이브'를 논하지 말라!고 옛사람들은 이야기하는.
곰사냥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처럼  대전 거쳐 충북 영동 들어왔던 길,
되돌아갈 때 정말 길을 거슬러 그대로 나갔던......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식은 땀이 송알송알,
신문방송에서만 접했던 고속도로 역주행.
급한 마음에 차머리를 돌려 반대로 나간 길.
부산가는 하행선이랍니다.
그래도 '역'주행이 아니고 '정방향' 주행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추풍령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대전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전날  대전갈때 백양사 근처에서 차가 고장나 영동까지 9시간 걸렸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 시간은 마음이 넉넉해질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길이 어디쯤일까,
옆길로 새서 유턴해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자유를 꿈꿉니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저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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