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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여 동안의 프로젝트가 끝났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린 듯하다.
이건 마치, 훈련소에 입소해서 첫 1주일동안 겪었던 모든 부조리한 일상에 대한 분노가, 4주째되는 날에는 바늘로 찔러도 전혀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무감각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느꼈을 때의 패배감과도 비슷하고.
지구 주위를 잘 돌아가던 인공위성들이 3개월이 지난 뒤에 궤도를 이탈하고 우주의 미아가 되어 쓰레기처럼 떠돌고 있는 듯한 머릿속이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12월엔, 늦은 귀가나 철야로 아내와 많이 다투었고,
은결이와 진모의 얼굴을 1주일에 한번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고.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늘 리스크를 안고 있었고,
아버님은 많이 편찮으셔서 구급차에 실려가시거나, 입원하시기도 했고,
후배들 결혼식의 축시를 연달아 세번이나 펑크를 냈고,
프로젝트 때문에 팀원들에게  야근, 철야, 점심굶기기 등 악덕 팀장 역할을 해야했고,
몸이나 일이 힘든 것은 감당하고 극복할 수 있었으나
휴식 시간에는 무조건 잠을 자는게 우선순위여서,
책 한권, 글 한편 쓸 마음의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다는 것이 늘 슬펐다.

오소희 기자의 글("인생, 이렇게 시시할 줄 미처 몰랐어")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역량이 부족했던 탓도 크다.
어쨌거나 프로젝트는 최종감리에서 '적정' 등급을 얻으며 끝났다.

웨딩촬영도 미뤄가며 자정이 넘도록 컴퓨터앞에 앉았던 무소속 승태씨,
(그를 만난 건 흙속의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 되었다.)
아이둘의 아빠인 홍대리님, 예측못한 돌발 야근과 철야에도 꿋꿋하게 잘 정리해주었고,
병특, 일반 사원에 못지 않게 열심히 일했고,
입사하자 마자 혹독한 신고식을 훌륭하게 치뤄낸 하늘과 물 천하씨.
감리가 1주일 늦춰지자 예정된 이직을 미뤄가며 최종감리까지  성심성의를 다해준 팀원.
퇴근하기전에 늘 뭐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어봐 주던 고마운 김피디, 양피디.
주간월간보고서 등을 "끝내주는 솜씨"로 처리하는, 대통령 앞에 설지라도 '저'가 아닌 '나'과장님.
쏟아지는 업무에 지쳐가면서도 늘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해주던 디자인팀 희 누님.
첫아이 백일을 보내면서 잠못 이룬 충혈된 눈으로도 열심히 버텨주던 디자인팀장.
일요일 오후 밤늦은 데이트를 끝내고 다시 돌아와 함께 도와주던 훈이형.
일요일 오후 휴대폰 한통화 날벼락에 기꺼이 회사로 뛰어와 함께 철야를 했던 병팔이형.
코 앞에 닥치 마감일 때문에 부장님의 요청에도 정중하게 거절했으나, 나의 읍소에 기꺼이 개발자 2명을 우리 팀으로 보내준, 일요일 철야후 월요일 날 2명의 팀원이 출근못하는 황당 상황까지 기꺼이 감수해주며 도와준, 법적으론 총각이나 회사공인 유부남인 김과장님.
팀원들 한 명 남을 때까지 함께 끝까지 남아 챙겨주던 부장님.
손수 야식, 담배, 컵라면 배달까지 챙겨주시던 큰 형님인, 절대 퇴학이 안되는 김정학이사님.
일일업무보고서 작성 스트레스 줄까봐 배려해주던, 세심한 마음 씀씀이를 보여준 동료부터
매뉴얼작성 등 미처 다 나열하지 못하는, 도움을 준 무수한 동료들이 있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Gracias a la vida
큰일에서 사소한 일들까지 함께 풀어나가는 지혜를 배웠다.
지쳐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늘 행복하고 결국은 모두 함께 승리할 수 있기를.

아버님은 다행히 아직까지 큰 병이 발견되진 않아서 다행이고,
오늘 하루 하루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 씩씩하게 버텨준 아내와 구김살없이 밝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프로젝트는 내게 또 하나의 중요하고 고마운 화두를 던져두었다.

Gracias a la vida 는  김남희씨의 '하늘 길 걷는 사람'(skywaywalker.com)에서 배웠다.
프로젝트 기간 중 큰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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