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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삼성전자 매스게임 동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우리회사에서 삼성SDI로 이직한 벗이 있어,  매스게임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6개월여에 걸친 연수교육이 끝나고 부서배치 받기전에 잠깐 짬을 내서 우리 회사에 들렀던 그, 그와 나는 회사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였다.

'싱싱한 영혼이여, 오래 오래 건승하라'
매스게임 동영상을  두세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몸이 들썩들썩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나도 함께 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께 어울려 그 싱싱한 젊음을 나누는 자리에 나도 끼어 있다면 하는 부러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이  '삼성전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신념과 가치관,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이 우루루 벌떼처럼 함께 모여들어 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서로의 몸을 비비며 미래의 비전 한 꼭지를 공유하며 뜨거운 열정을 발산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인가.
물론 '적극적인 동지'가 아닌 '회사원'으로 모였지만, 대부분 20대 중후반인 청년들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사원으로서 그 첫마음은 얼마나 뜨겁고 설렐 것인가.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는 그런 '참여의 기회'가 부러웠다.


'강경대'로부터 시작해 김귀정, 박승희 ...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대의 폭압에 스러져갔던 전대협 마지막세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학교 강의실에서 잠을 자고, 출범식을 맞이했을 때, 그 아름다운 장관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수만명의 청년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어내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율동을 즐기던, 그 수만명의 하나된 함성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던 경험.
( 92년 서태지의 등장, X세대 논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80년대 대학세대와는 또다른 문화공동체가 당시 우리 의식의 한 지지대이기도 했었다. )
몇년전까지는 가끔 안치환이 무대에 선다고 하면, 대학축제에 놀러가곤 했었다. 그곳에서도 그런 '집단의 아름다움-젊음과 문화의 공동체'가 있었다.
이제는 야구장에 가서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 가끔 그런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문부식)'이라고 했던가.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일 것. 서울에서 생활한다면 대학로에 자주 놀러가고 했을텐데, 지방이라 그런 기회가 없어서 많이 아쉽다.

대학졸업반 시절, 삼성전자 입사시험을 본 적이 있었다. 운좋게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SSAT를 거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전공면접'과 '인성면접'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전공면접에서 나는 '반도체 극성'에 대한 부분을 선택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했었다. 프리젠테이션 끝나고 면접관이 던졌던 질문이 기억난다. PNP, NPN 에서 전자가 어떻게 끌려가는지... 그 때 나는 마땅한 표현이 없어, 손짓을 동원해가면서 "Collecting 한다"는 표현을 했었다.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터라, 가급적 모든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현하고자 의도적으로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용어를 바꾸어서 설명했었는데, 결국 표현이 막히자 Collecting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다른 면접자들은 전부 영어로 용어를 표현하는데, 나만 우리말로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억지스럽기도 했다. 음. 친구들은 다 원서로 공부했는데 나는 주로 번역본으로 공부한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 이력서에는, 항상 고등학교 졸업후 대학입학까지 3년의 '서류상의 공백'이 있다. 전공면접시간에 한 면접관이 그 공백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고, 솔직하게 답변을 했었다. Student movement로 가장 유명한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고.
몇가지 질문들이 오고가고,

"삼성에는 노조가 없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예상된 질문이 나왔다. 사실 전날 밤잠을 설쳐가며 거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답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정답은 없었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여유있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삶, 그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의미의 답을 했더랬다.

그 면접관의 환한 얼굴이 기억이 난다. 3~4명쯤 되던 다른 면접관들은, 계속 이어지는 면접 '업무'에 다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었는데, 그 면접관만은 부처님처럼 얼굴이 환히 빛나고 면접자들에게 눈빛을 맞추고, 활기에 차 있었으니까.
(TV에 자주 나오는 조연배우를 닮은, 배우를 해도 될만큼 핸섬한 얼굴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 얼굴을 찾으라고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새파랗게 젊은, 입사 면접자에게 '삼성노조'라는 질문을 뭐 심각하게 던졌을리는 만무하겠지만, 함께 면접을 봤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 논란이 분분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해에 결국 입사시험에 합격했을까, 떨어졌을까^^

나는 지금, 지방에 있는 한 IT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개발자에서 막 벗어나 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 잡지, 신문, 책, 학습, 가투로 익혔던 삼성은 '공공의 5적'이었는데(지금 생각하면 나의 이해와 인식이 얼마나 경직되고 피상적인 것이었는지 우습기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꽤 진지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내 회사 책상의 책꽂이에는 '삼성관련 서적'들로 가득하다. '삼성'에 관한 책이라면 웬만한 책들은 거의 모두 구입해서 읽어가고 있는 중이다. (개인사정으로 입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런 질문과 답변에도 그 해에 나는 삼성전자에 최종합격을 했고, 유성에 있는 연수원에서 며칠간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도 했다.)

한국현대사에서 삼성, 현대로 대표되는 재벌기업성장사에 대해서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냉철하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좀더 확대하자면 사회적 역할과 경제적 기여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중소기업 IT개발팀중 한팀의 팀장으로서, 삼성SDS, 티맥스소프트, 안철수 연구소, 구글 등은 내게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조직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점. 소속된 직원들의 뛰어난 마인드와 역량을 배운다는 것은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건 우리 팀과 부서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까.
회사생활을 하려면, 세상 어디에서나 언제나 치열하게 살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 정말 뼈저리게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치열함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열심히 배워야 하리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결국, '삼성'의 문제를 '구성원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든지, 고정된 이미지 틀(물론 그 이미지 틀은 언론방송, 본질적으로 삼성으로부터 나온 것이겠지만)에 갇혀 굳이 무리하게 삼성전자 매스게임을 재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볼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일 것이고, 나는 거기서 '역동하는 젊은 청춘들의 싱싱한 집단적인 아름다움'이 혹여 다른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압도할 수 있을만큼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본 제목처럼, 그 설레는 첫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건승하기를 기원한다.
개인만의 쾌락과 안락을 위해서 보다,  집단(공동체)의 목표와 비전을 위해서, 또 그것이 개인의 것과 일치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 매스게임 동영상' 에서 '삼성전자'가 아니었다면,
만약,  '유한킴벌리 매스게임 동영상'이었다면, 우리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XX회사'라는 명칭(소속) 때문에 그 매스게임 동영상에 180도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엉뚱한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백만불짜리 열정(이채욱)에서 보면, 사원에서 팀장이 되는 순간이 직장생활의 과정중에 가장 설레는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다고 한다. '지시받은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에서 업무를 '기획'할 수 있는 가장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는 다른 한명의 팀장을 포함해 15명의 팀원이 있다. 이직률이 높은 중소IT기업이고, 지방업체이긴 하지만, 안연구소, 티맥스,  삼성SDS를 넘어서는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의 구글을 꿈꾼다. 각각의 팀원들이 평생 직장으로 삼고싶을 만큼 키워나가고, 백발이 성성한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이 20대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열정과 꿈을 다할 수 있는 곳. 10년이나 15년쯤 뒤에는 우리회사 남미지사장, 중국지사장, 러시아지사장 등 아직 미개척시장으로 나가 해외지사장으로 매출액 500억, 1000억을 이루어 보고픈 꿈도 있다. 지금  동고동락하는 팀원들과 함께 그런 꿈들을 이루어가고, '모두 모두 즐거워 떡도 먹고 술도 먹고'
(아, 그 과정중에 설레는 목표 하나, 대한민국 최고의 '사보'를 직접 만드는 것. 지금까지 그 어떤 유명한 사보도 흉내내지 못하는 가장 멋진 글과 그림이 실린 사보. 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 때까지 열심히 할 것. 삶은 누적이지 대박이 아니라는 것. 지금 당장 진행하는 프로젝트 멋지게 완수할 것. 최소한 1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

그리고, 멋진 귀향.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고향(나주시 금천면 동악리)을 대신해,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 대안공동체 마을로의 귀향.  '이익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곽재구)지 않아도 되는,  '느림의 미학',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는, 섬김, 나눔, 연대, 실천. 그런 아름다움을 꿈꾼다.
꿈은 머지 않아 실현되리라. 그 과정에 서 있는 매 순간 순간들이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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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7/07/06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경대,김귀정, 박승희 그 이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힘 내세요.^^
    팀원들한테 잘해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