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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전 12기로 선거에 당선된 의지의 한국인.
회사일 때문에 보궐선거에 참여하지 못했었지만,  투표했다면 나와 아내는 강도석에게 한표씩을 던졌을 것이다. 부모님은 강도석에게 한표를 던지셨다. 이제 한번 밀어줄 때가 된 것 같다고.
정말 기대가 크다.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난다 해도, 그가 가진 기개와 투혼이 마음껏 불타올랐으면 하는 바램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민주당'이면 당선된다는 심장부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걸, '선거인단'으로서 늦게라도 진심으로 축하, 축하, 축하드린다.

네이버에서 '강도석'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벌써 시청과 맞장을 뜨고 있는 기사가 올라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기사의 사연은 대충 이렇다.
광주에 특급호텔을 짓고자 하는데, 그것은 시청이나 지역의 오랜 소망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지역 건설업체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특급호텔이 없어서 '특급'행사의 유치가 어렵다는 지역신문의 지원기사도 심심찮게 올라왔던 터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특급호텔 신축시 건축 및 운영상의 적자보전을 위해서 시공업체(건설업체)에 '혜택'(이라고 표현하는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뭏든 이익보전)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강도석 시의원이 그것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대단~!!, 여기서 별다섯개를 확 줘버리고 싶다.

잘되는 일에 딴지를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시공업체' 자리를 따내기 위해서 영업활동도 치열했을 것이고, 사업공시가 나기도 전에 이미 '용도변경'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스토리가 진작에 만들어졌을 터. 막대한 꿀(이익)이 있는 자리에, 벌떼처럼 무수한 사람들의 흔적이 지나쳤을 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들 눈 감은 척 자질구레한 것으로 여겨지는 부당한 것들에 대해 그냥 지나쳤을 터, 이 좁은 광주 바닥에서 튀어봤자 자신만 왕따될 것이고, 어느 똑똑한 작가는, 지방자치제도가 지역민의 참여자치를 실현한 게 아니라, 지역토호세력의 영구토착화를 가져왔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중앙정부에서도 터치하지 못할 정도록 견고한 세력을 구축해버린...

강도석은, 그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지자체 수장의 힘은, 중앙정부 대통령의 권력보다 영향력이 더 막강한 법. 학연, 지연, 혈연을 기반으로 맺어진 이 끈끈한 바위에 계란으로 부딪쳐 가는, 한 이름없는 열혈전사에게,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라도  박수~~~

그는, 그의 사무실 앞에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놨다.  '역사는 무엇으로 불타오르는가' 하고 묻고 있다. 밑에 '시의원'이라는 말이 없으면, 타지 사람들은 아마 국회의원쯤으로 언뜻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시의원'이 '역사'를 불타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오바'다. 아니 '오바'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오바'일지라도, 그의 진정성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꼭  '오바'를 성공적으로 실현시켜주기를 바란다.

내가 '강도석 시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1995년 '6.27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를 때였다.  공익근무요원(제도의 수시변경으로 여차 저차 사연은 길다.)으로 4주훈련이 끝나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후보들은 다 한번씩 선관위 사무실에 직원들(당시에 사무장 포함, 여직원1명 포함, 5명) 격려차 들렀었다. 격전지가 아니기 때문에 선거는 늘 평화로웠고 (말뚝만 꽂아도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나를 포함해 세명의 공익근무요원과 직원들은, 30명의 당선자준비, 80여명의 후보등록자 등으로 인해 아뭏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는데(거의 매일 야근) 운 좋게 유세장에서 '강도석'의원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의 초딩시절부터 늘 동일한 지역에서 선거에 출마했던 그, 더군다나 그의 사무실이 우리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시절'에 늘 그가 궁금했었다. 도대체 선거때마다 안 빼먹고 맨날 나오는, '민주당' 간판도 없이 '무소속'으로 나오는 그의 속내는 도대체 뭘까. 물론 지금도 그 속내는 알 수 없다.^^

유세 순서가 되어, 연단에 오른 강도석 의원, 날 계란 두개를 손에 들고 있더니, 연단앞으로 하나를 툭 던졌다. '저의 첫번째 도전(꿈)이 깨어졌습니다. ', 몇 마디 말을 하고 다시 두번째 계란을 던지더니, '저의 두번째 도전(꿈)이 깨어졌습니다.'  뭐 이런 대사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호~~~' 이럴 수가, 예술가네~~~.

흡사, 작은 백기완의 연설을 보는 듯, 그의 웅변은 대단했다. 청중을 휘어잡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손짓, 카리스마가 넘치고 기개가 대단했다. 나는 거기서 '강도석'이라는 인물의 진정성, 아니 그가 내뱉는 말들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투혼을 볼 수 있었다. 공약이나, 정책, 비전 이런 내용으로 연설이 채워진 것은 아니고, 자신의 꿈과 이상, 도전과 좌절 뭐 이런 내용으로 채워진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돈기호테, 그가 가진 꿈과 희망이 진실하고 소신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 체면과 형식, 가식, 허위의식을 벗어던진 것만으로도 이십대 초반인 내게는 후보들중 군계일학이었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당시에 내 어린 생각에는 구청장이나 국회의원 자리에,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뚜렷한' 경력이나 실적이 없는 그를 무턱대고 찍을 수는 없었다.^^   당시에 여러모로 경력이 검증된 후보들도 꽤 있었으니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능력을 드러내지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표 던지기에는, '시행착오'의 댓가가 큰 법.

12전 1승 11패, 19년의 세월동안 11패를 안고 마침내 그는 1승을 이뤄냈다.
그의 당선소감도 멋지고, 당선증을 안고 감회에 젖는 모습도 참 아름답다.

이제 좌충우돌 그의 시의회 활동기를 보는 것이 큰 재미가 될 것 같다.
한판 승부로 모든 것을 다 혁신할 수는 없으리라. 의욕이 하늘에 닿아 있는 만큼 때때로 실수도 있을 것이고. 지혜가 강물처럼 흘러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최선을 다해 멋진 삶을 살아주기를.

강도석 시의원, 그가 만들어가는 역사가, '무엇'으로 불타오를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멋진 강도석 의원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타지 지역민들이라도, 많이 많이 응원해주시라, 여기 한 멋진 '사내'가 '역사'속에 서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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