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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시절부터 그랬다.
태풍전야의 고요함과, 보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교정의 가로수들 머리채를 온몸으로 뒤흔드는 그런 날들은, 나도 함께 미칠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져 분수처럼 사방으로 흩어질 것만 같은 그런 날들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쟁기로 세상을 갈아엎고, 세상을 한손으로 쥐었다 폈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온 세상이 자신의 무대로 충만하게 다가왔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낭만이기도 했고, 객기이기도 했다. 욕구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지금도 그리운 전대 들솔문학 동기, 선후배들이 있었다.

술을 먹게 되면, 그리운 사람이 그리워진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던 친애하는 말당 서정주의 시가 송창식의 목소리로 머리속에 울려퍼지고.
보고싶은 이름들 불러본다.
윤동주는 그의 시 '별 헤는 밤'에서 많은 이름들을 불렀었지.
그처럼 참혹한 시절의 빛나는 생을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술 한잔 먹은 날에는 이름들을 불러보고 싶어.

'유광영' 내가 사랑한 우주인. 많이 보고 싶어. 함께 회사생활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에 출근하면 반가운 이름. 얼굴만 봐도 그리움 가득한 사람.
정말 많이 아쉬워요. 그냥 숙명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건지...

임혜은, 많이 많이 보고 싶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후배, 지금은 첫 아이를 낳고 더욱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났으리라. 너는 서울에 있고, 나는 타지에 있어 내가 보고 싶은 그리움의 깊이만큼 네게 닿지는 않을 것이고, 세월이 지날수록 동아리방에서 함께 했던 기억들은 잊혀지겠지만, 종한씨와 행복하게 살아야 하리. 기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 '축시'의 기회를 내 생에게 최초로 부여해주었던 아름다운 이름.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만큼,
그가 노숙자이든, 그가 대통령이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내가 순간 순간 집중해서 사랑했던 이들이여.

김윤경, 영화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많이 많이 보고 싶어.
당신을 그 뜨거운 열정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오래 오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께. 서울에 가면, 못본지 오래된 그 이름. 김윤경. 전화하고 싶어.

허민중. 넌, 이름때문에 네 평생 무거운 짐이 될지도 몰라.
너처럼 착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이 정말 최고로 행복한 세상이 올 것인지.
지상낙원이 있다면, 너는 그 첫번째 시민권자가 되어야 하리라.
사랑하는 후배여.

불러본다.
아름다운 이름들.
후배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선배들을 기억속에서 조금씩 지워가는 것처럼. 꺽정이형 이시현, 게슴이형 위윤원, 별나라 철학자 김용현, 상바라라바라밤 상범샘, 그 찬란한 이름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가는 것처럼.

가자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자. 가자.


나는 지금 몇시 몇분에 살고 있는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사속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는 지금, 몇시 몇분인가.


흔해빠진 독서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는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이 까닭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 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은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 (하략)


-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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