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의 경기도 안양 출장길에 서울에 들렀다.
오랜만에 다시 가보는 학교.
마을버스를 타고 후문에서 내려, 왼쪽으로 대학원 건물들
게임사관학교 프로젝트 때문에 들렀던 대학원 건물은 여전하다.
오른쪽에는 교양체육 시간에 한번쯤 수강해보고 싶었던 테니스장.
대운동장 한켠에는 건물을 세우느라 공사가 한창이고,
늦은 가을이라 바람도 매섭고 낙엽들도 스산하다.
동아리방(우리가 불렀던 이름은 '둘레방'이었다.)에 들렀다.
낡은 옷장에서 헌 옷가지를 뒤지듯이, 내가 보냈던 이십대의 흔적들을 챙겼다. 습작토론회, 시화전 문집속에서 예전의 내 글을 찾아서 주섬 주섬 가방에 담았다.
물새 발자국처럼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난 후에는 이 흔적들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었다.
은행나무
- 동아리방 창 밖의 은행나무에게
애타게 기다리지 않아도 가을은 온다
은행잎은 천지를 물들인다
네 뜨거운 피도 마음의 짐을 꾸리고
오래도록 흐르려거든 온도를 낮추어야겠지
네 피가 뜨거워지기 오래 전
천년 전부터 이 풍경은 늘 뜨거웠으니
가슴 졸이며 애태우지 않아도
은행잎은 소리 없이 네 피 속으로 진다.
잘 살지 못해 미안하다.
1999 가을.
내가 썼던 이십대의 시들은 다 한결같다.
'힘들다.', '고민이다', '아 답답하다'...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
괜히 혼자서 세상을 다 짊어진 척하며 시라고 나불거린 것은 아닐까.
지금 보면 때대로 우습기도 한데.
대부분은 시들은 썼던 당시의 상황과 구절들이 생각나는데, 이 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시를 찾던 순간, '맞다, 이런 시도 썼었던 것 같다.' 했었다.
아마도, 급조된 시였던 모양이다.
섬
이 겨울에는
결코 나뭇가지에 남아서 버틸 수는 없으리
내가 떠나고 돌아온 계절들이 뜨거웠던 만큼
상처도 깊었고
보도블럭마다 수북히 떨어진 은행잎들
찬 바람에 흩날려 이리도 어지러운데
이 은행잎들을 따라 나도 사라져 갈 자신은 있는 것일까
내 청춘은 술 한 잔 걸친 초저녁처럼
발길을 떼지 못한 채 빈 가지만을 바라보다
돌아서며, 스물일곱번째 해를 무엇이었노라 기록할 것인가
더 이상 시 따위는 읽지도 쓰지도 말자고
목숨을 거는 사랑쯤이야 먼 훗날로 미루어 두자고
매운 바람에 다짐해보지만,
문득 어느 이른 아침
골목길을 나서다 말없이 날리는 눈발속에서
하얀 입김처럼,
아프게 생의 온기는 피어오른다.
1999. 봄
개강하기 전쯤이었을 것이다.
IMF 를 1년을 지나고 2년째 들어서던 해. 겨울이 채 끝나지 않아 자취방에서 학교로 올라가는 길은 손이 시렸고 감기는 여전했고, 마음이 추웠던 날들로 기억된다.
김형수의 시집 속에 있는 시 한편의 감상을 그대로 '표절'했던 글.
시도 사랑도, 공부도, 취업도, 운동도, 모두다 막막했던 시절이었다.
엉뚱하게 슬퍼하고 있었던 것인지, 엉뚱하게 분노하고 있었던 것인지...
경춘선
이 철길을 따라 몇은 군대로 떠났고
삶에 단풍이 들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듯
몇몇은 올해 새 얼굴로 바뀐 채 돌아오는 경춘선
무엇 때문에 우리는 청평으로 떠난 것일까
길을 서울에서 청평으로 이어져 있고
사랑도 삶도 늘 우리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성급하게 무엇인가 챙겨오려고 떠난 것은 아닐까
혹은 나이테 만큼 굳은 살 박힌 그리움들 풀어두고 온 것일까
지난 밤의 술꼬장과 난리법석도
남길 것 버릴 것도 없는 우리 생활의 일기겠지만
삶의 역사가 어찌 하루만에 뚝딱 산맥을 쌓을 수 있을까만은
모든 것을 그리워만 하다가
철철 넘치던 냇물은 흘러가 버리고
자갈들만 앙상하게 드러나면서 개울은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바위틈을 지나던 물소리 머리속에 윙윙 거리는데.
목숨 하나만 달랑 남았어도 그 목숨은 또 물길을 만들어 가리라
물길이 잦아드는 곳에 그래도 희망같은 마른 바위 하나 남겨두고
청량리로 돌아가는 경춘선 열차안
창밖으로 지나가는 목련에게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는 먼 산에게
묻는다 나 오늘을 가득차게 살고 있는지
1998년 봄.
동아리 엠티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
전날 동기녀석과 후배녀석 하나가 심하게 다퉜다. '술꼬장과 난리법석들'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걸 수 있었던 나이들.
여자 동기 하나는 그 새벽에 사라져, 계곡근처 자갈밭에서 몸을 파묻은 채 졸고 있었고. 엠티에서 돌아오는 길, 심란했고.
혹시나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시를 썼었다.
그래도 아직 이 시속에는 희망이 많이 남아있는 듯 하다.
슬픈 노래
삶의 무게중심을 잡고 서 있지 못하면
산동네 불빛들마저 점점이 가슴으로 와 박히고
소주 한 잔에도 눈물이 난다
삶의 주위 어딘가에 잡을 만한 지푸라기 없을까
청맥서점에 쭈그리고 앉아 시집을 들춰보아도
가난한 사람들끼리 어깨 걸고 술잔을 채워도
심장의 맥박소리는 아득하게 무너져 간다
날마다 내 안에서 무너지고 일어서는 것들.
삶은 끝끝내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가야 하는 것일까
울지 마라,
제 피를 희석시키면서 길은 없었노라
지혜롭지 못했노라 울지 마라
닳고 해진 옷 속에서도 우리 은수저처럼 간직해 온
그 사랑, 성찬을 나누어 먹듯 즐거워하며 숟가락을 돌리지 못하고
끼니를 때워야 할 무거운 쌀자루처럼 등짐지고 온 것은 아닌지
산 너머 그리운 모습들만 찾아다닌 것은 아닌지
보이던 길은 끝나고
이제 스스로 새로운 길이 되어 가야할 때
진정 사랑이 아름다운 시절이 왔다고 하자
몸속의 혈관을 풀어헤쳐 길을 놓아가는
착하디 착한, 아끼는 후배 97학번 민중이가 그랬다.
"형 시에는 '피', '심장', '혈관' 이런 단어들이 안 들어간 시가 없어요."
움찔했었다.
아마도, 내가 시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혈관'이 아니었을까.
이 시가 습작토론회에 나왔을 때,
지금은 영화 공부를 하는 '윤경'이가 그랬다.
'오빠가 청맥서점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시를 읽었다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였구나'
....
청맥서점의 주인장은 '내일을 여는 집' 소설가 방현석이다.
실제 서점 운영은 방현석씨랑 비슷하게 생긴 그의 동생이 했더랬다.
청맥서점에서 책을 읽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심심해서 들렀다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