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1 : 절대선(善)-movement
이제 짐을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밥을 먹는 식당에서도, 잠을 자는 방안에서도,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내가 무엇을 하든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실 때도, 땡볕에서 하루 종일 삽질을 하고 있을 때도, 족쇄처럼, 무거워 무거워 되뇌이며 자꾸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이 짐을.
'절대선(善)-movement',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의 이십대를 지배하며 혈관을 타고 흐르던, 세포 구석구석 손과 발과 머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무거움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단어도 훌쩍 지난 유행어가 되어버린 이제에서야 비로소 그것이 나의 무거운 외투였음을 알아차렸으나, 그냥 모두 벗어버리기에는 내겐 너무 서글픈 일이었다.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지우기를 몇번 반복하다가, 2005년 파란닷컴에 블로그를 만들었고, 2006년 테터툴즈 블로그로 옮기면서, 나는 왜 지금 겪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지난 이야기들에 목을 메고 있을까, 반복해서 되묻곤 했다. 목에 걸린 체한 음식을 다 토해내지 못하고서는 새로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다 토해내야만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쉬워서, 그냥 잊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목에 걸린 음식처럼 토해내지 않고서는 늘 부담스러웠고, 안타까웠던 것이었다.
버리고 또 버렸다.
기존 블로그에 남겨두었던, 글을 쓰기 위한 메모들과, 써두었던 몇편을 글들. 스크랩해온 글들. 한번에 다 버릴 수 없어 두달동안 몇번씩 들락이거리며 한두편씩 버리곤 했다.
내가 버리는 것들은 몇 편의 글로 위장된 내 아쉬움들,
내가 버리는 것들은 지난 날들의 땀과 생채기로 얼룩진 무거운 외투.
내가 버리는 것들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내 욕심과 욕망들.
깨끗히 빨아서 옷장속에 넣어두고 싶다.
자유로워 지고 싶다. 이제부터는 정말 스스로도 행복해지고 싶다. 생의 유쾌한 시간들로 채워가고 싶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손석춘의 '혁명은 어디쯤 와 있는가'를 읽게 되었고, 이 옷장속에 넣어두려고 한다.
가라, 나를 붙잡고 있던 지난 날들의 '생채기', '애달픔', '아름다움'이여.
그리고 이제부터는 씩씩하고 행복하게 새 살이 돋아올라라.
희망은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부쩍 자주 듣는 물음이다. 딴은 사회적 문제만이 아니다. 무릇 실존의 한계상황에 부닥쳐본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 아닌가.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룬 사회의 살풍경에 하릴없이 절망감을 느낄 때면, 그 물음 앞에 가슴은 한결 더 시리다.
희망을 찾는 간절한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른다. 동서고금 두루 인류는 '모범답안'을 마련해두었다.
"희망은 발견하는게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실 '정답'이자 옳은 말이다. 희망은 본디 만들어가고, 더불어 키워가는게 아니던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게 희망이다.
'우리 역사에 희망은 있는가'
그 물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르는 체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역사를 조금만 되새김질해보면 절망에 휩싸이기 쉽기에 더욱 그렇다. 비단 역사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몸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둘러보아도 아득한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민주공화국'임을 헌법에 못박았음에도 자유민주주의의 밑절미인 사상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수구세력이 대한민국에 엄존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들은 외세에 부닐며 민족 적대정책을 고집한다. 틈날 때마다 남북화해정책을 트집 잡는다. 조금만 노동자에 우호적이면 서슴없이 색깔의 낙인을 찍는다. 더 심각한 것은 수구세력이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고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그 과반수 의석과 여론독과점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존재근거를 지니고 있어 상황은 더 어둡다. 반민주적 현실을 이성적 대화로 극복해나가는 과정 자체를 지역감정이 뒤틀고 있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이 반통일.반민주적 언행을 일삼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 앞에서 반성은 커녕 오히려 '색깔공세'로 되술래잡는 모습은 희극이다. 하지만 그 희극은 수구세력을 대변하는 세 신문사가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기에 한낱 우스개에 머물지 않는다. 희극이 비극이 되는 그곳에 절망의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
수구세력을 넘어서려는 민중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지역감정과 색깔공세를 이겨내며 등장한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민중이 '희망돼지'를 흔쾌히 내놓으며 일궈낸 노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일찌감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미국 조지 부시와의 정상회담에서 굴욕적 외교를 펼침으로써 민족위기가 한층 더 깊어졌고, 집권 반년만에 민중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길로 들어섰다. 희망이 컸기에 절망도 그만큼 더 아플 수밖에 없다.
정치만이 아니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황금만능의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정치,경제,사회, 문화 엘리트들 사이에 만연된 검은 돈의 사슬 때문은 아니다. 지배세력의 부패에만 그친다면 절망은 사치일 수도 있다. 문제는 저 물신숭배가 겨레의 내일을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순결한 영혼마저 시나브로 물들이는 사실에 있다. 오늘 이 땅의 초중고등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꿈은 더 이상 '존경받는 사람'이거나 '위인'이 아니다. 절대다수의 꿈은 애오라지 하나다. 부자다. 돈 많이 벌고 즐기는 일이다.
돈이 절대가치인 '돈 공화국'의 풍경은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인 사랑마저 갉아먹었다. 사랑 타령은 곳곳에 넘실대지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돈과 성의 과잉은 '매춘 공화국'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에서 성을 사고 파는 데 오가는 돈은 공식집계로도 연간 24조 원에 이른다. '성 매매 거절운동'에 나선 여성계에 따르면, 실제 규모는 2~3배에 이른다. 돈과 성을 교환하는 세태는 중고교에 다니는 학생들까지 오염시켰다. 인터넷을 통한 매춘에 주부들마저 곰비임비 나서는 상황이다. 그랬다. 이미 1998년 한국여성개발원의 조사에서 매매춘 여성은 100만명이었다.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치는 15살에서 39살까지 '젊은 여성'(통계 분류로는 '가임 여성') 10명 가운데 1명은 성을 돈 받고 판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선 경찰은 그 숫자를 150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렇다. 정직하게 우리 자화상을 직시할 때다. 오늘의 대한민국, 오늘의 서울이야말로 '소돔과 고모라' 아닌가. 돈과 쾌락이 넘쳐나는 공화국이다. 가히 총체적 타락이다.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남녀노소 두루 뼛속까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일인다. 아니다. 왜 그러한가를 냉철히 새겨보아야 한다. 무릇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지 않은가. 오늘의 절망적인 현실도 찬찬히 뜯어보면 이유가 있다. 현실은 언제나 과거의 연장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너무다 당연한 말이기에 자칫 잊기 십상이지만, 한 겨레의 흥망성쇠는 민족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 땅의 역사가 식민지와 분단으로 이어진 가장 큰 책임은 외세 못지않게 우리 자신에 있다. 겨레의 역량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복잡해 보일수록 냉철하게 진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근대사회를 스스로 열어제치지 못했다. 유럽의 민중이 그들 위에 살천스레 군림하던 왕과 왕비의 목을 가차없이 자르고 근대사회를 열어갈 때, 조선의 민중은 이씨 가계가 지배하는 왕조체제를 뒤엎을 힘을 스스로 키워내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강점한 뒤에도 줄 이은 눈먼 행렬은 결국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해서였다. 오해 없기 바란다. 제국주의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전혀 아니다. 더 많은 이윤을 좇아 다른 나라에 침략을 서슴지 않는 제국주의는 비판해야 마당하다. 하지만 그 비판이 그저 비판에 머물지 않으려면, 비판하는 주체들이 올곧게 서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와 사회에 희망은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나 '과연 우리 역사속에서 희망을 기대할 수있는가'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우리 민중에 희망은 있는가
앞서의 논의로 미루어 본다면, 얼추 절망적으로 보인다. 식민지와 분단시대로 이어져 여태 자주적 민족국가조차 일궈내지 못한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한 꺼풀만 벗겨보아도 그런 판단은 말 그대로 피상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실의 밑바닥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정반대의 진실이 드러난다. 공연한 역설이 아니다. 기실 오천 년을 내세우지만 우리 역사에서 민중의 집단적 각성은 오래되지 않았다. 민중의 글인 한글이 우리 역사에서 국어로 정착된 것은 더더욱 짧다.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조선시대 초기였으나지배세력은 한자로 그들의 정치적 문화적 권위를 누리며 권력을 독점해왔다. 기나긴 세월동안 민중은 대다수가 문맹에 젖어 있었거니와 한글을 깨친뒤에도 상황은 당장 달라질 수 없었다. '언문'으로 천시됨으로써 민중에게 힘이 되는 지식이 한글에 담기는 데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역사 읽기의 혁명'이 절실한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민중이 온전히 자신의 글을 지니고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며 자신들을 조직화해나간 역사는 이제 겨우 초창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본과 청의 연이은 침략으로 이 땅이 불바다, 피바다가 된 뒤 지배세력의무능을 뼈저리게 깨달은 민중 사이에 근대적 각성이 싹트기 시작했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이 나온 게 그 무렵인 것도 상징적이다. 부패한 양반계급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여 있는 [홍길동전]이나 [춘향전]이 솔솔 일으킨 바람이 시사하듯이 사회적 자아의식을 시나브로 지니게 된 민중은 19세기에 이르자 곳곳에서 이른바 '민란'을 일으켰다.
그 정점이 갑오농민전쟁이다. 조선시대 말기 전라도 일대를 해방하고 서울로 진격하던 갑오농민전쟁의 민중은 오욕으로 얼룩진 우리 근 현대사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기념비를 세웠다. 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했지만 이미 봉기를 통해 의식이 성숙한 민중은 온 강산을 피로 물들이며 줄기차게 반일의병투쟁을 별여갔다. 1894년 12눨 8일, 농민군이 우금치 결전을 앞두고 한글로 쓴 '고시문'을 돌려 "일본군이 '개화간당( 開花奸黨)과 손잡고 조선을 왜국화하고 있다"고 성토한 것은 상징적이다. 농민전쟁 뒤 오늘에 이르는 한 세기의 역사는 가히 '혁명의 세기'였다.
40만 명의 사상자를 낸 갑오농민전쟁에 이어 민중의 힘은 3.1운동으로 다시 분출됐다. 일본의 공식발표만 보더라도 7천 5백여 명이 학살당하고 부상자도 1만 6천여 명에 이르렀다 .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대다수 '지도자'들이 변절을 일삼을 때도 조선의 민중과 지식인들은 쉼없이 민족해방운동을 별여왔다.
하지만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이 땅에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는 민중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미국이 제안한 분단선을 소련이 받아들이면서 나라가 두동강났다. 그 결과 민족상잔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쟁이 다시 분단으로 고착화하기까지 최소 1백만여 명이 학살당했다. 하지만 그 '폐허'에서도 우리 민중은 4월의 혁명을 꽃피우지 않았던가.
그렇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표면적이나마 민주주의를 이룬 뒷면에는 4월 혁명에서 5월 항쟁과 6월 항쟁에 이르는 민중운동의 핏빛 역사가 살아 움쉬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빈민들이, 젊은 학생들이 아낌없이 몸을 던져왔던가. 그 도저한 역사 앞에서 절망이란 한낱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더러는 "숱한 봉기가 있었으되 모두 실패했다"며사뭇 솔직한 듯 체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분석은 죄악에 가깝다. 역사적 실패를 거론하려면 민중의 책임을 묻기 전에 항쟁에 일떠선 민중을 외세와 손잡고 학살한 반민족세력과 그것을 방관해온 기득권세력을 먼저 고발해야 마땅하다. 그래서다. 역사의 실패를 거론하며 절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과연 반민족세력이 기득권세력을 역사의 법정에 고발하는 데 얼마나 성실했는지 묻고 싶은 까닭은.
아울러 그 연장선에서 되물어야 한다. 누가 이승만을, 누가 박정희를, 누가 전두환을, 저 피묻은 독재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는가. 김영상,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을 누가 대통령 자리에 앉혔는가.
민중이다.
민중은 더디지만 그렇다고 조급함 없이,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역사의 발걸음을 옮겨왔다. 반대로 민중의 성숙을 언제나 가리튼 것은 기득권세력과 그들의 대변자 '먹물'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여론 독점은 형태를 달리하고 전략이 세련됐을 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양반계급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한 사상을 '사문난적'으로 처단함으로써 역사발전의 상상력을 가두었듯이 오늘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대중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신문과 방송이 서로 앞다투며 황금만능의 세상을 화려하게 펼치면서 '소비가 곧 행복'임을 부추기는데 어찌 사회구성원들이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사와 현실이 생생하게 웅변하듯 민중은 무지렁이가 아니다. 수구세력은 물론이거니와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수구 정권으로의 회귀'를 우울하게 전망했던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중은 '노무현 바람'을 일으켰다. 그래서다. 대통령에 오른 노무현 개인이 아니라 '노무현 바람'을 일으키 민중 앞에 새삼 옷깃을 여미며 겸허할 때다.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참혹한 죽음을 맞은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를 밝혀주었다.
하여, 진지하게 자문해보고 성찰할 때다. 예상보다 일찌감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말을 앞세운 '먹물'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 현실의 저 깊은 곳에서 웅숭깊은 민중은 아무 말없이 새로운 혁명을 일궈가고 있지 않을까. 혁명은 바로 그곳까지 와 있는게 아닐까.
따라서 '우리 민중에 희망은 있는가'라는 물음 거듭 재구성되어야 한다.
'현실의 깊은 곳에서, 아니 가슴 깊은 곳에서, 말없이 일궈가는 민중의 희망을 읽을 사람은 누구인가.'
비로소 바르게 제기된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일이야말로 민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우리 자신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이다. 정녕 누구인가. 그 자신 민중의 구성원이면서 민중의 희망을 민중과 더불어 현실로 구현해나갈 사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