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애는 오지 않았다
지금 어디선가 버스를 기다리며 애타게 서 있을까
잔업이 있어 그 일을 끝내고 오는 것일까
화장기 없어도 별처럼 맑아보이는 눈동자
별눈이라는 별명이 좋아
지친 몸을 누이고 창가에 비치는 별을 바라보고 있을까
학교 다닌 여고생처럼 사춘기적 눈물이라도 있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그 소원을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아니면
병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손마디 쑤시는 미싱일을 마치고
미팅이다 디스코텍이다 회식이다 모든 것을 물리치고
손때 묻은 몇권의 책과 노트를 가방에 넣고
수업시간에 늦지 않을세라
저녁 먹지 못하는 허기짐을 쥐어짜며 오고 있을
그애는 오지 않았다
팔년동안 일해 마디 굵은 손가락이지만
봉숭아 물을 들이니 예쁘지 않냐는
어린 아가의 재롱같은 스무살의 수줍음에
기름이 자주 묻어 색깔이 옅어진다고 하소연했지만
손톱을 길어 고급스러운 매니큐어 칠한 여자보다도
대리석 깔린 카페에서 고독을 음미하는 여성보다도
사랑타령하는 긴 머리 짧은 스커트의 인기가수보다도
비싼 패션 스타일로 활보하는 속빈 여대생들보다도
마지막 수업시간이 되면 스르르 눈이 감기다가
스스로 터져나오는 긴 하품이
바로 때묻지 않은 힘찬 아름다움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여자들이 있었느냐
야학 오는 길목에서 남자들이 너에게 시비를 걸었느냐
고등학교 포기하고 돈번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남동생을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느냐
주인집 아주머니가 방값 주라고 한바탕 하였느냐
아직도 밤하늘엔 별이 반짝 반짝하는데
너의 눈동자보다는 밝지를 못하는구나
야학생들이 돌아간 텅빈 교실에서
다시 한번 출석을 부른다
......
그러나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영원히 올 수 없는 사람처럼
그 애는 오지 않았다
- 희망야학 황용수
1991년 전남대 2학생회관 4층
'희망야학'이라는 동아리가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책상은 먼지가 수북히 쌓이지도 않았고, 가끔씩 월별 일정표는 업데이트가 되곤 했다.
'흙가슴'이라는 봉사동아리와 함께 방을 쓰고 있는 탓이기도 했지만,
나는 혹시나 거기가 윤상원의 '들불야학' 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희망야학' 빈 동아리방에서 우두커니 시를 읽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도 이런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부럽다. 존경스럽다. 대단하다. 내 생의 뜨거운 시간들을 이런 삶으로 채울 용기가 내게도 있을까'
그렇게 되뇌었던 시간들.
야학을 빠졌던 그 아이와, 그를 가르치면서 이 시를 썼던 황용수 선배처럼
그의 '아름다운 마음처럼'
나도 내 생의 시간을 채워갈 수 있을까.
18개월의 공익근무 기간내내, 그 이후로도 야학에서 일했던
'별을 이야기하는 철학자' 친구 용현이.
야학활동이란,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진정 온전히 바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선뜻 나서지 못했고
그런 내가 늘 미안했고, 그가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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